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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3.14 17:10 수정 : 2012.03.14 17:10

[매거진 esc] 심정희의 반하다

작은 키 콤플렉스를 솔직한 웃음으로 승화시킨 개그맨 황현희

한바탕 웃음을 터뜨릴 때가 있다. 만사를 잊고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눈물까지 쏙 빠지도록 웃을 때가 있다. 도저히 제어할 수 없이 터지는 그런 웃음은 대체 어디에서 기인하는 걸까? 불행보다 더 웃긴 것은 없다는 사뮈엘 베케트의 명언과 비극에 시간을 더한 것이 바로 희극이라는 우디 앨런의 지론을 빌려 생각해 보자면, 우리를 그토록 한바탕 웃게 하는 것의 본질은 바로 우리의 무의식 속에 숨어 있던 고민이나 두려움인지도 모른다. 그것들이 다른 계기에 의해서, 나와 똑같이 느끼고 있던 누군가에 의해서 우스꽝스럽게 폭로될 때 우리는 배꼽이 빠지도록, 눈물이 쏙 빠지도록 한바탕 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키높이 깔창 하나로 대한민국이 ‘빵 터졌다’. 그동안 대한민국에서 남자들의 작은 키가 얼마나 서로 쉬쉬하던 콤플렉스였는지를 시사하는 대목이다. 말 못할 콤플렉스를 웃음으로 승화시킨 남자여서 그런지 지난 2일 여의도 한 카페에서 만난 황현희는 자기 키보다 훨씬 커 보였다.

개그맨 황현희. 사진 박미향 기자

profile

1980년생. 2004년 <한국방송>(KBS) 19기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 <한국방송> ‘좋은나라 운동본부’, ‘개그콘서트’ - ‘남성 인권 보장 위원회’, ‘황현희 PD의 소비자 고발’, ‘범죄의 재구성’, ‘불편한 진실’, ‘위대한 유산’ 등 출연.

오늘 입은 의상은 모자나 가방 때문인지 굉장히 컨셉추얼해 보이는데요? “사냥 나가고 싶은 영국의 귀족 콘셉트예요. 금요일이잖아요. 뭔가 어디로 나가고 싶은 마음을 표현했어요. (진짜요?) 아뇨. 사실은 그냥 나온 거예요. 별로 할 말이 없어서 해 본 말이고….(웃음) 옷은… 신경 쓰려고 노력하죠. 아무래도 갖춰 입으면 사람들이 그만큼의 대우를 해주는 거 같아요. 옷 입을 때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은 아무래도 키예요. 키가 좀 작기 때문에. 사실 되게 콤플렉스였는데 지금은 개그로 승화시킨 케이스죠. 중·고등학교 다닐 때는 키 큰 애 어깨에 제 턱이 부딪히면 무조건 싸웠어요. 너무 자존심 상해가지고. 그 정도로 키에 대한 콤플렉스가 컸어요. 거의 제가 했던 코너도 보면 제가 서 있고 키 큰 애들 다 앉혀놓거나, 아니면 저는 앉아 있고 다 세워놓거나 이런 식으로 안 들키게 하다가 이번에 한 방에 터뜨려버린 거죠.”

콤플렉스를 개그로 승화시킨다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말 그대로 콤플렉스잖아요. “그동안 당하는 개그를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어요. 항상 깔끔한 정장 입고 나와서 논리적으로 설명한다거나 말로써 웃기는 거였는데….

사람들이 저랑 같이 있으면 좀 어려워하고, 괜히 말 한번 잘못했다가 호되게 당할 거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이미지로 7, 8년이나 굳어졌어요. 너무 굳어지는 것도 문제고, 개그맨이 개그맨다워야 한다고 느꼈죠. 망가져도 돼야겠고 다른 역도 해봐야겠고….

그렇다면 한가지 당하는 것도 좋은 코드가 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이제는 당하는 게 뭐…. ‘위대한 유산’ 같은 코너도 사실 옛날 같으면 안 했거든요. 개그맨으로서 어깨에 힘을 좀 뺀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들 반응이 너무 좋아요. 다가와서 말을 걸기 시작하더라고요. 옛날에는 뒤에서 황현희다, 황현희다 그랬는데 요즘은 와 가지고 진짜 깔창 까세요? 막 이런 식으로 가볍게 다가오고.”

“당하는 개그를 해본 적이 없어요
개그맨이 개그맨다우려면
이제는 망가져야겠다 싶었죠”

사실 웃음이란 게 어떤 문제든 부드럽게 극복하는 좋은 수단 같아요. 이제는 작은 키에 대한 콤플렉스는 없어 보여요. “이제는 신발 벗으면서 오늘은 이거 꼈어. 그러면 빵 터지죠. 근데 요즘 사람들이 제가 너무 작은 줄 알더라구요. 김병만·이수근급인 줄 알더라고요. 아, 그건 아니다.(웃음) 포털사이트엔 168㎝로 나오더라고요. 보통 키가 자기 키보다 3, 4㎝씩 크게 나오잖아요. 근데 저는 제 키보다 작게 올라와 있더라고요. 저 169.6이에요. 이 정도면 172로 나와야 되거든요?(웃음)”

자신감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황현희만의 매력이라면 자신감 같아요. “네. 아무래도 자신감이 강하죠. 아무렇지도 않게 막 무조건 ‘아이 뭔 소리야?’ 이래 버리고. ‘싫어 안 할 거야’ 해버리고. 제가 호불호가 좀 분명하거든요. 사석에서나 처음 보는 여자들한테도 그러니까 항상 사람들이 그렇게 물어봐요. 뭘 믿고 그래?(웃음) 자신감은 아버지가 주신 거예요. 집안이 약간 그래요. 아버지가 당당하세요. 항상. 개그맨이 자신감 없으면 끝이에요. 내가 키높이 깔창 깔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그래, 나 깔창 끼고 있다. 어쩔래? 단점일 수도 있지만, 단점도 웃기잖아. 뭐 이런 식이죠.”

“개그맨은 자신감 없으면 끝이에요
나 깔창 끼고 있다 어쩔래?
단점도 웃기잖아, 이런 식이죠”

개그맨으로서의 생활이 어떨지 참 궁금해요. 매주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게 참 어렵고 고단한 일일 것 같은데. “오늘이 아이디어 검사 맡는 날이에요. 요즘 오디션 프로그램이 득세를 하잖아요. 근데 사실 저희는 매주 그걸 하고 있었어요. ‘나는 가수다’가 관객들 점수로 가수를 탈락시키는데, 저희는 매주 이미 하고 있었던 거죠. 순위 밖으로 밀려나면 코너는 방송에 안 나가요. 점수까지 매기는 건 아니지만 피드백이 가장 빨리, 웃겼는지 아닌지 너무나 금방 알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정말 살벌해요. 따지고 보면 가장 비정규직이고,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젤 심한 곳이에요. 근데 어떤 면에선 이런 무한경쟁체제가 맞는 것도 같아요. 창작하는 곳이기 때문에. 창작의 보편화를 가져와 봐요. 창작의 평등을 주장하는 이상 그 창작은 이미 창작이 아니잖아요.

개콘이 지금까지 12년 동안 장수한 원동력이 무한경쟁체제예요. 기업에서도 이런 시스템을 알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래서 행정학 대학원에서 지금 개콘 행정학에 대한 논문도 쓰고 있고.”

<한국방송> ‘개그콘서트’ 불편한 진실(왼쪽 사진)과 위대한 유산.
사람들을 웃기는 데 제일 필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세요? “센스죠. 상대방의 기분이나 분위기를 읽어야 되고, 언제 어떤 말을 해야 웃음을 줄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해요. 사람들을 다 관찰해야 하고요. 이런 데 와서도 전 주위에 앉은 사람들을 관찰해요. 일상 자체가 다 소재예요. 항상 메모하는 편이에요. 그리고 여기는 고여 있으면 썩어요. 안 고여 있으려고 계속 보죠. 젊은 애들의 마인드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새로 나온 드라마, 영화, 가요, 잡지, 신문 뭐… 다 보죠. 다. 받아들이는 것의 연속이에요. 받아들이고 버리고, 받아들이고 바로 버리고, 계속 바꿔줘야 해요. 그래야 살아남는 거 같고, 그게 좋은 개그맨의 자질이죠.”

실례지만, 오늘도 깔창 깔고 나오셨나요? “깔창….(웃음) 신문에서 봤는데 전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남성 패션 아이템이 키높이 구두래요. 뭐, 세계적인 트렌드고, 아이돌 애들도 다… 뭐, 거의 깔창의 아이콘처럼 나오잖아요. 별의별 별명이 다 나와요. 어제 녹화하는데 구두요정 그러는데 너무 웃기더라고요. 뭐, 어떻게 보면 여자들 뽕 넣듯이 남자들 깔창 까는 거고….(웃음) 저기 쟤도 깔창 깐 거 같은데?(웃음)”

심정희 패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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