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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심정희의 반하다
작은 키 콤플렉스를 솔직한 웃음으로 승화시킨 개그맨 황현희 한바탕 웃음을 터뜨릴 때가 있다. 만사를 잊고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눈물까지 쏙 빠지도록 웃을 때가 있다. 도저히 제어할 수 없이 터지는 그런 웃음은 대체 어디에서 기인하는 걸까? 불행보다 더 웃긴 것은 없다는 사뮈엘 베케트의 명언과 비극에 시간을 더한 것이 바로 희극이라는 우디 앨런의 지론을 빌려 생각해 보자면, 우리를 그토록 한바탕 웃게 하는 것의 본질은 바로 우리의 무의식 속에 숨어 있던 고민이나 두려움인지도 모른다. 그것들이 다른 계기에 의해서, 나와 똑같이 느끼고 있던 누군가에 의해서 우스꽝스럽게 폭로될 때 우리는 배꼽이 빠지도록, 눈물이 쏙 빠지도록 한바탕 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키높이 깔창 하나로 대한민국이 ‘빵 터졌다’. 그동안 대한민국에서 남자들의 작은 키가 얼마나 서로 쉬쉬하던 콤플렉스였는지를 시사하는 대목이다. 말 못할 콤플렉스를 웃음으로 승화시킨 남자여서 그런지 지난 2일 여의도 한 카페에서 만난 황현희는 자기 키보다 훨씬 커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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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 황현희. 사진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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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이 개그맨다우려면
이제는 망가져야겠다 싶었죠” 사실 웃음이란 게 어떤 문제든 부드럽게 극복하는 좋은 수단 같아요. 이제는 작은 키에 대한 콤플렉스는 없어 보여요. “이제는 신발 벗으면서 오늘은 이거 꼈어. 그러면 빵 터지죠. 근데 요즘 사람들이 제가 너무 작은 줄 알더라구요. 김병만·이수근급인 줄 알더라고요. 아, 그건 아니다.(웃음) 포털사이트엔 168㎝로 나오더라고요. 보통 키가 자기 키보다 3, 4㎝씩 크게 나오잖아요. 근데 저는 제 키보다 작게 올라와 있더라고요. 저 169.6이에요. 이 정도면 172로 나와야 되거든요?(웃음)” 자신감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황현희만의 매력이라면 자신감 같아요. “네. 아무래도 자신감이 강하죠. 아무렇지도 않게 막 무조건 ‘아이 뭔 소리야?’ 이래 버리고. ‘싫어 안 할 거야’ 해버리고. 제가 호불호가 좀 분명하거든요. 사석에서나 처음 보는 여자들한테도 그러니까 항상 사람들이 그렇게 물어봐요. 뭘 믿고 그래?(웃음) 자신감은 아버지가 주신 거예요. 집안이 약간 그래요. 아버지가 당당하세요. 항상. 개그맨이 자신감 없으면 끝이에요. 내가 키높이 깔창 깔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그래, 나 깔창 끼고 있다. 어쩔래? 단점일 수도 있지만, 단점도 웃기잖아. 뭐 이런 식이죠.” “개그맨은 자신감 없으면 끝이에요
나 깔창 끼고 있다 어쩔래?
단점도 웃기잖아, 이런 식이죠” 개그맨으로서의 생활이 어떨지 참 궁금해요. 매주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게 참 어렵고 고단한 일일 것 같은데. “오늘이 아이디어 검사 맡는 날이에요. 요즘 오디션 프로그램이 득세를 하잖아요. 근데 사실 저희는 매주 그걸 하고 있었어요. ‘나는 가수다’가 관객들 점수로 가수를 탈락시키는데, 저희는 매주 이미 하고 있었던 거죠. 순위 밖으로 밀려나면 코너는 방송에 안 나가요. 점수까지 매기는 건 아니지만 피드백이 가장 빨리, 웃겼는지 아닌지 너무나 금방 알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정말 살벌해요. 따지고 보면 가장 비정규직이고,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젤 심한 곳이에요. 근데 어떤 면에선 이런 무한경쟁체제가 맞는 것도 같아요. 창작하는 곳이기 때문에. 창작의 보편화를 가져와 봐요. 창작의 평등을 주장하는 이상 그 창작은 이미 창작이 아니잖아요. 개콘이 지금까지 12년 동안 장수한 원동력이 무한경쟁체제예요. 기업에서도 이런 시스템을 알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래서 행정학 대학원에서 지금 개콘 행정학에 대한 논문도 쓰고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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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송> ‘개그콘서트’ 불편한 진실(왼쪽 사진)과 위대한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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