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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2.02 15:01 수정 : 2012.02.02 15:01

[매거진 esc] 신 기장의 야간비행

“어떻게 저렇게 크고 무거운 비행기가 하늘을 날 수 있을까?”

주변 사람들에게 참 자주 듣는 말이다. 비행기를 잘 아는 항공역학도나 엔지니어조차도 같은 말을 하곤 한다. 논리적으로는 이해하지만, 눈으로 보고 신기한 건 신기하다는 것이다. 그럴 만도 하다. 거대한 쇳덩어리가 날아다니니 말이다. 내가 모는 에어버스 A330의 최대 이륙중량은 무려 230t이나 된다.

하지만 조종사 입장에서는 하나도 신기한 일이 아니다. 아마도 항상 이 ‘날개 달린 기계’와 함께 하늘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바람을 가르는 날개와 앞으로 밀어주는 엔진이 있고, 균형을 맞춰주는 꼬리날개와 위아래·양옆으로 움직이는 조종타만 있으면 마음껏 날 수 있는 건 당연한 일이다. 엔진은 내 무게의 4분의 1만 지탱할 정도면 충분하다. 아무리 과학이 발전했어도 비행기가 나는 원리는 100년 전 라이트 형제의 ‘플라이어’호나 지금의 에어버스 A380이나 똑같다. 그리고 하나같이 새들이 나는 것과 꼭 닮았다.

황소를 본 적 없는 아비 개구리가 아이 개구리들 앞에서 거드름을 떨듯, 우리는 고작 이삼백t 비행기를 앞에 두고 지나친 허세를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수천억t이 넘는 하늘 속에서 비행기는 태평양 심해에 떠다니는 작은 플랑크톤 정도일 뿐이다. 가을철 낙엽도 떨어지지 못하고 이리저리 바람을 타고 날아다니는데, 날개와 엔진 달린 비행기가 저 거대한 하늘을 날 수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파도가 없으면 서핑을 할 수 없고, 눈이 없으면 스키를 탈 수 없듯이 하늘과 바람이 없으면 우리도 날 수 없다. 물론 우리가 날 수 있게 되기까지는 많은 사람들의 숭고한 희생과 노력이 있었다. 나는 그들을 마음 깊이 존경하며 자긍심을 느낀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마음껏 날 수 있는 것은, 하늘을 사랑하고 열망하는 인간의 정성 어린 진심을 위대한 자연이 알아주었고 우리가 바람을 탈 수 있도록 허락해줬기 때문이다. 그래서 날개 달린 기계를 다루는 사람들은 하늘 앞에서 경거망동하지 말아야 하며, 마음을 속여서도 안 되는 것이다.

버릇처럼 들어온 ‘자연을 사랑하자, 자연을 보호하자’는 말이 우습게 느껴진다. ‘자연의 파괴’는 사실은 ‘인간문명의 파괴’를 의미하는 것이고 ‘지구의 종말’은 ‘인류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가 자연을 망치고 스스로를 멸한다 해도 자연은 상관하지 않는다. 자연은 수십만년, 수백만년 동안 천천히 스스로를 치료해 나갈 테지만 우리 인류는 더 이상 그 안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대자연이란 우리가 사랑해주고 보호해줘야 할 그런 가여운 존재가 아니라, 아첨을 해서라도 잘 보이고 교태를 부려서라도 사랑을 구걸해야 하는 너무나 위대한 존재인 것이다.

신지수 대한항공 A330 조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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