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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2.16 15:13 수정 : 2012.02.16 15:13

[매거진 esc] 신 기장의 야간비행

스위스 취리히에서 이륙을 하려면 이륙 성능을 꼼꼼히 검토해야 한다. 장애물이 많은 산악지형 탓도 있지만 공항 주변의 소음규제가 까다로워서 이륙하는 비행기들에 높은 상승률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내가 조종하는 A330은 비행기 무게에 비해 엔진 출력이 적은 편이어서 연료의 효율이 높은 대신 상승률과 속도가 느리다. 오늘도 만석의 승객과 서울까지 갈 연료를 가득 싣고 나니 비행기는 여느 때보다 더 무거웠다. 관제탑으로부터 이륙 허가가 떨어지자 엔진 출력을 최고로 높여 용을 쓰며 날아올랐다. 소음측정기가 위치한 지점을 제한된 최저고도보다 고작 이삼백피트 높게 지나자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이고 힘들어라… 무거워서 겨우 올라왔다! 이 정도면 마을 할배들도 봐주겠지!” 이 동네는 소음 감시가 꽤나 심해서 마을 사람들도 쌍안경을 들고서는 낮게 나는 비행기들을 감시한다.

비행은 등산과 비슷하다. 비행은 바람을 타고 올라가지만 등산은 산을 타고 올라간다. 비행기는 엔진의 추진력으로 전진하지만 등산은 비행기처럼 강한 추진력이 필요 없다. 내가 어릴 적 걸음마를 뗀 이후 줄곧 나를 ‘추진’해온 두 다리만 있으면 된다. 비행과 등산 모두 중력의 힘을 이겨내려 발버둥 친다. 올라가지 말라고 그렇게 당겨대는데, 굳이 떨쳐내고 오르려 한다. 하늘 높이 올라가면 힘겨웠던 중력과의 싸움은 모두 잊고 눈앞에 펼쳐진 웅장한 모습에 입이 떡 벌어진다. 그리고 거대한 세상을 이 작은 가슴으로 끌어안은 감동에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인간은 이렇게 호기심이 많고 모험심이 강하다.

그렇다면 나는 중력과 싸워 이긴 것일까? 착각하지 말자. 절대 그렇지 않다. 바람을 가르며 나는 것도, 험한 산길을 헤쳐 오르는 것도 모두 다 중력이 있기에 가능하다. 중력은 이 세상에 나를 지탱해주고 내 존재를 확인시켜주는 거룩한 자연의 축복인 것이다. 아무도 더이상 날 찾지 않는다 해도 중력은 끝까지 나를 강하게 끌어안아 줄 것이고 심지어 내가 스스로를 버리더라도 중력은 나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만약 지탱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그때 정말 버려진 것이다.

중력은 나보고 올라가지 말라고 그렇게 잡아당긴다. 그런데 그걸 뿌리치고 올라와보니 이상하게 다시 집이 생각난다. 집에 돌아와 보니 삐쳐서 이제 날 버렸나 싶었지만, 다시 집을 나설 때는 또다시 내 발목을 잡고 늘어진다.

그렇게 많은 죄를 저질렀건만 그래도 자연은 인간을 감싸 안는다. 그 많은 불효를 했건만 부모님은 내 뒷모습에 눈길을 놓지 못한다. 결코 좋은 아빠가 아니었건만 아이는 웃으며 먹던 초콜릿을 내 입속에 구겨 넣는다. 사랑은 꼭 주고받는 것만은 아닌가 보다. 이제 집으로, 내 자리로 돌아가자.

신지수 대한항공 A330 조종사·<나의 아름다운 비행>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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