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5.02 18:07
수정 : 2012.05.02 18:07
[매거진 esc] 신 기장의 야간비행
비행기를 뒤흔드는 공포스러운 터뷸런스(난기류)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기압과 온도가 다른 두 개의 공기층이 만나 생기는 것인데, 이때는 거대한 적란운이 형성되어 육안이나 기상레이더로 예측해 피할 수 있다. 반대로 맑은 하늘에 생기는 터뷸런스가 있는데, 대표적인 게 제트기류다. 제트기류란 지구자전에 의해 중위도와 고위도 사이에 생기는 강력한 편서풍을 말한다. 마치 긴 터널처럼 ‘에어포켓’을 형성해 그 속에 시속 200~400㎞의 강한 바람이 부는데, 주변 공기와 만나는 경계 면이나 기류의 굴곡 등에서 터뷸런스가 생긴다. 문제는 이곳이 어디인지 관측할 수 없다는 점인데, 그래서 이를 ‘보이지 않는 위협’이라 한다.
예전에 내가 아직 부기장이던 시절 한동안 화물기를 탔었다. 그날도 수출 화물을 가득 실은 채 늦은 밤 미국 알래스카 앵커리지를 향해 출발했는데, 한여름이라 제트기류가 북상해 항로를 따라 흐르고 있었다. 출발 후 기장에게 밤참 준비를 하겠다고 말하자 기장이 말하길, “지수야, 요새 제트기류가 심상치 않으니 좀 나중에 먹자. 밥 먹다가 밥상 엎을라.” 그래서 우리는 주린 배를 잡고 한동안 조심스럽게 기류를 관찰했다. 어느 정도 기류가 괜찮아 보이자 식사 준비를 시작했다. 당시 화물기에는 항상 조미료 맛 그윽한 육개장이 실렸는데, 그날도 나는 오븐에 육개장과 인스턴트 쌀밥을 데워 조종실로 가져갔다.
조종사들 사이에는 터뷸런스에 관한 두 가지 징크스가 있다. 첫째, ‘좌석벨트 사인을 켜면 기류가 조용해지고, 끄면 흔들리기 시작한다’는 것인데, 그래서 우리는 좌석벨트 스위치를 ‘터뷸런스 스위치’라고 부르기도 한다. 둘째는 ‘밥 먹을 때 꼭 흔들린다’는 것인데, 그날도 이 징크스는 사실로 증명되고 말았다. 조종석에 앉아 무릎 위에 종이를 깔고 쟁반을 올려놓자, 비행기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급히 관제소에 연락했다. “도쿄, 중간급 이상의 터뷸런스가 있다. 고도변경을 요청한다!” 그러나 도쿄 관제소는, “지금 비행기들이 많아서 사용 가능한 고도는 3만9000피트밖에 없다. 올라갈 수 있는가?” 우리는 그 고도까지 올라가기에는 너무 무거웠고, 결국 지금 고도에서 터뷸런스를 뚫고 지나가야 했다. 충격으로 자동조종장치가 해제될 것에 대비해 조종간을 쥐고 있었으며, 행여 한계 속도를 초과하거나 고도를 이탈하게 될까 계기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다시 식사를 계속할 수 있기까지는 거의 한 시간이 지나갔다. 그러나 이미 육개장이 담긴 용기는 바닥이 드러나 있었고, 우리의 흰색 유니폼은 육개장 국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앵커리지 공항에 도착했을 때, 두 명의 동양인 조종사는 처절한 홍콩 누아르 영화 속의 주인공 커플이 되어 있었다. 이민국에서 입국심사를 하는 미국인이 말했다. “당신들 괜찮아요? 비행기에서 난투극이라도 벌인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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