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5.30 18:09
수정 : 2012.05.30 18:09
[매거진 esc] 신 기장의 야간비행
인천공항을 이륙하여 상승하고 있을 때, 관제사가 나를 불러 물었다. 9시 방향에 인천공항이 보이냐고.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네, 공항이 보입니다.” 그때 갑자기 엔진계기의 바늘들이 0을 향해 곤두박질치고 경고등이 붉게 켜졌다. 부기장이 소리쳤다. “올 엔진 플레임 아웃!!”(엔진이 모두 꺼짐)
“에잇 ××!” 일단 욕부터 뱉어낸 뒤 조종간을 잡으며 소리쳤다. “체크리스트!” 부기장이 체크리스트를 꺼내는 동안 나는 머리를 쥐어짰다. ‘침착해야 해. 하나하나 짚어보자. 우선 글라이딩 속도를 맞추고, 비상전력과 유압장치를 가동하고, 또… 그렇지, 이것부터!’ 나는 무전기 키를 잡았다. “메이데이, 메이데이! KE123편, 모든 엔진이 페일(Fail)되었다.”
관제사는 기다렸다는 듯 지시를 내렸다. “공항은 8시 방향 10마일에 있다. 바람은 020방향 3노트. 원하는 모든 활주로에 착륙을 허가한다.” 부기장은 체크리스트를 따라 이것저것 스위치를 열심히 조작했다. 나는 부기장에게 말했다. “착륙할 때까지 계속 엔진 재시동을 해라. 될 때까지 포기하지 말고, 한번에 하나씩 돌아가면서!” 당황하는 부기장에게 한마디 더 던졌다. “우리는 할 수 있어. 너나 나나 혼자서는 어려울지 몰라도, 우리 둘이라면 할 수 있다. 알겠지?”
이제부터는 힘 조절이다. 글라이딩으로 목표점에 닿도록 비행경로를 그려야 한다. 두번 기회는 없다. 고도를 다소 높게 가져갔다. 잠시 후 랜딩기어를 내렸다. 그런데 너무 높게 가져온 것일까? 비행기는 적정 강하 각보다 점점 더 높아졌다. 하는 수 없이 약간의 지그재그를 그리며 비행기를 기울여 강하율을 높였다. 2000피트를 지날 때 좌석벨트 사인을 요란히 울리며 방송을 했다. “충돌 대비 자세! 비상착륙까지 2분!”
비행기가 활주로에 도달했지만 아직도 높았다. 속도도 빨랐다. 총 활주로 길이 1만2000피트 중 4000피트도 넘어서야 겨우 강한 충격과 함께 바퀴가 땅에 닿았다. 나는 최대한 강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활주로 끝이 다가오자 부기장도 함께 브레이크를 밟기 시작했다. “활주로를 벗어나면 안 돼!” 고온을 견디지 못한 타이어 2~3개가 연달아 터지면서 비행기가 활주로 끝에 겨우 멈춰 섰다. 조종간을 쥔 손에는 땀이 흥건했다.
갑자기 조종실이 밝아졌고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축하합니다. 우리 모두 살았습니다. 훈련은 여기까지!” 모의비행훈련 교관이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엄살을 부렸다. “아니, 교관님 눈치라도 주셔야지, 깜짝 놀랐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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