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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8.08 18:07 수정 : 2012.08.08 18:07

[매거진 esc] 신 기장의 야간비행

‘해가 서쪽에서 뜨겠다!’ 뭔가 평소에 하지 않던 일을 청개구리처럼 하면 듣는 말이다. 그런데 해가 서쪽에서 뜨는 것이 과연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일까?

내가 국제선 비행을 막 시작한 주니어 부기장일 때 처음으로 해가 서쪽에서 뜨는 것을 목격했다. 미국 알래스카 앵커리지를 출발하여 서울을 향해 비행하는데, 저녁노을이 붉게 바랜 서쪽 하늘에서 수평선 위로 이글거리는 불덩이가 천천히 솟아오르는 것을 보고는 놀라 소리쳤다. “저게 뭐죠!?” 그러자 기장은 껄껄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해잖아! 해가 서쪽에서 뜨는 거 처음 보는구나? 우리 비행기 속도가 지구 자전 속도보다 빨라서 그런 거야.”

나중에 알았지만, 지구의 자전 속도는 약 시속 1670㎞이다. 그러나 그것은 원의 지름이 가장 큰 적도 부분의 속도이므로 우리가 비행한 북위 60도 부근에서는 속도가 훨씬 느려진다. 수학이 젬병이라 정확히 계산할 수는 없지만, 이 지역의 지구 단면 지름이 대략 적도의 절반보다 작을 것이므로, 바람이 없는 곳에서 시속 900㎞ 정도로 날 수 있는 비행기로 충분히 자전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서쪽으로 비행할 때에는 항상 강한 편서풍을 맞바람으로 안고 비행하기 때문에 실제로 비행기가 지구 자전 속도보다 빨리 비행하기는 어렵다. 이런 기회는 강한 편서풍(제트기류)이 남쪽으로 이동하는 겨울철에만 찾아오는 것이다. 물론 극지방으로 가면 자전 속도가 더 느리고 바람도 없지만, 북위 70도 이상이 되면 낮과 밤이 뒤바뀌고 동서남북 방향이 애매해져 해가 정상적으로 뜨고 지지 않는다.

서쪽 하늘 위로 아주 천천히 떠오르는 해를 마냥 신기한 눈으로 보고 있자니 문득 내가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기적이 아니었다.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니 하늘에 보름달이 떠 있었다. ‘그래. 해가 동쪽에서 뜨는 것은 단지 인간세상에서 인간의 눈으로 보는 현상일 뿐이다. 그것은 우리의 관념일 뿐,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다. 진리는 지구가 자전을 하고, 달과 함께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좁은 인간세상에 살면서 ‘관념’과 ‘진리’를 자주 혼돈하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믿는 관념 속에는 진실 말고도 인간의 욕심이 만든 헛된 망상들이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눈으로 보지 못하는 것을 믿지 못하고 마음이 가지 않는 것들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더 높은 곳에서 더 멀리 볼 수 있다면, 세상에 포용하지 못할 것이 없을 텐데 말이다.

신지수 대한항공 A330 조종사·<나의 아름다운 비행>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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