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8.22 17:55
수정 : 2012.08.22 17:55
[매거진 esc] 신 기장의 야간비행
훈련생 시절, 첫 비행을 한 날을 잊을 수 없다. ‘세스나 172’라는 작은 프로펠러 비행기를 타고 활주로를 떠오르는데 너무 무서웠다.
이미 승객으로 비행기를 타봤고, 놀이공원의 기구도 즐겨 타던 내가 고소공포증이나 비행공포증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첫 비행을 끝내고 돌아오니 마음이 심란해졌다. 과연 내가 조종사가 될 수 있을까? 며칠을 고민하다 나름의 치료법을 생각해냈다. 비행하면서 마음속으로 ‘내 비행기는 놀이공원의 비행기처럼 위에 끈이 달려서 하늘에 매달려 있다. 그러니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다!’고 되뇌는 것이었다. 얼토당토않은 방법처럼 보였지만 의외로 효과가 있었다. 다리가 후들거리는 공포감이 조금씩 덜해졌다.
그러나 약효는 오래가지 않았다. 며칠 후 실속(失速·stall)훈련을 할 때 공포가 되살아났다. ‘실속’이란 날개 표면의 공기 흐름이 속도를 잃고 흐트러져 비행기가 바람을 타지 못하고 추락하는 것을 뜻한다. 이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실제로 실속을 재현한 뒤 회복하는 훈련을 한다.
비행기가 실속에 들어가 앞으로 꼬꾸라지자 나는 마치 수영을 못하는 사람이 물에 빠져 버둥거리듯 조종간을 흔들어댔다. 교관이 대신 비행기를 안정시켰고, 몇 번을 더 해보았지만 나는 공포감에 조작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결국 교관은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실속에 들어가면 조종간에서 손을 떼고 가만히 있어봐. 아마 비행기가 너보다 더 잘할 거야.” 즉 회복하기 위한 조작을 아예 하지 말고 비행기가 어떻게 되는지 가만히 지켜만 보라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실속한 비행기는 잠시 동안 추락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곧 속도를 얻으며 저절로 실속에서 벗어났다.
실속이 일어나도 비행기는 스스로 안정성을 찾아 자연스럽게 다시 날 수 있다. 무거운 기수 쪽이 아래로 내려가면서 날개도 다시 바람을 탈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양쪽 날개에 실속이 매우 불균형하게 일어나면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조종사의 역할은 가능한 한 빨리 실속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는 것뿐이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하늘을 나는 것은 ‘내’가 아니고 ‘비행기’라는 것을. 나는 그 위에 올라탄 채 녀석이 나는 것을 도와주는 것뿐이다. 내가 비행을 잘하기 위해 배워야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조종간을 붙잡고 낑낑대며 녀석을 잡아끄는 것이 아니라, 녀석이 잘 날 수 있도록 녀석을 믿고 사랑하는 것이었다. 이제 비행기를 믿게 되니 하늘을 나는 것이 무섭지 않았다.
신지수 대한항공 A330 조종사·<나의 아름다운 비행>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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