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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9.05 18:28 수정 : 2012.09.05 18:28

[매거진 esc] 신 기장의 야간비행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하는 것은 언제나 최고의 스타이고 그가 바로 무대의 주인공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멋진 꿈을 꾸어 봤으리라. 비행을 하다 보면 가끔 악천후를 만날 때가 있는데, 비행기는 이때가 바로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태풍과 같은 악기상이 찾아오면 많은 비행기의 운항이 중단되는데, 기상 수치가 운항 제한치를 훌쩍 넘어버리면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 조종사가 의사결정을 쉽게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힘든 순간은 기상이 제한치를 넘기 직전에 착륙할 때다. 기상이란 것이 단순한 일차방정식이 아니라, 마치 거래량이 폭등하는 주가 차트처럼 요란한 진폭을 그리며 변화하기 때문에 제한 수치에 완전히 안착하기 직전이 조종사에게 가장 어려운 순간이 되는 것이다.

작년 이맘때였다. 그날도 출발 직전까지 운항이 취소되지 않을까 초조하게 기다리다 겨우 김포공항을 출발했다. 제주행 비행이었는데, 북상하는 태풍이 제주를 덮치기 전에 착륙해야 했다. 역시나 강한 바람이 정측풍 방향으로 제한치에 가깝게 불고 있었고 풍속의 변화가 심했다. 제주도 남쪽 해상을 보니 벌써 태풍이 저 앞에 와 있었다. 거대한 적란운 구름은 마치 그리스 영웅들의 석고상과 같이 화려한 자태를 자랑하고 있었고, 그 주위에 크고 작은 구름이 아킬레우스의 군대처럼 넓게 진을 치고 있었다. ‘어디 한번 나 잡아 봐라!’ 농담으로 인사를 했지만, 사실은 각오를 다지기 위해 마음속으로 되뇌는 주문이었다.

드디어 착륙 순서가 되었다. 한라산에 부딪히며 돌아치는 돌풍은 비행기를 ‘강남스타일’로 춤추게 했다. 측풍은 거의 제한치에 가까워졌고 속도계도 흥분한 관객처럼 덩달아 춤을 추었다. 온몸으로 열연하는 비행기를 겨우겨우 달래며 활주로 위로 올라섰을 때, 나는 불타오르던 전의를 가라앉히고 조용히 내 소망을 말했다. ‘우리를 받아 주세요.’

‘퉁’ 하고 바퀴가 닿으면서도 비행기는 몸을 비틀어댔다. 그러나 내가 조종간을 쓰다듬을수록 비행기는 서서히 흥분을 가라앉히며 땅을 뜨겁게 끌어안았다. 활주로를 빠져나가는데 다음 순서로 착륙하던 비행기가 착륙을 중단하고 복행(Go around)했다. 잠시 후 바람이 제한치를 훌쩍 넘어 공항은 운항이 중단되었고, 우리는 무대의 피날레를 장식한 주인공이 되어 버렸다. 게이트에 도착한 뒤 나는 밖으로 나와 비행기에 박수를 쳐주었다. “브라보! 하지만 난 절대 스타 비행기와 비행하고 싶지 않다니깐!”

신지수 대한항공 A330 조종사·<나의 아름다운 비행>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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