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9.20 10:36
수정 : 2012.09.20 10:36
[매거진 esc] 신 기장의 야간비행
더위가 한풀 꺾인 8월 마지막 날, 나는 미국 엘에이(LA)의 체류 호텔에서 아침 운동을 하러 헬스클럽에 갔다. 지루할 것 같아 텔레비전을 켜니 때마침 방송에서 ‘패럴림픽’을 홍보하는 영상이 나왔다. 장엄한 음악을 배경으로 ‘슈퍼휴먼’들의 멋진 모습을 보면서 울컥해서 눈물이 나와버렸다.
‘나이 먹을수록 눈물만 많아지는구나’ 생각하며 러닝머신에 올라 달리기를 시작했고 방송에서는 여러 가지 경기를 하이라이트로 보여주었다. 그중에서도 시각장애인들이 벌이는 5인 축구경기는 정말 놀라웠다. 모두가 눈가리개를 하고 공을 차는데 도저히 시각장애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능숙하게 공을 다뤘다. 그런데 그때, 벽에 맞고 잔디 위에 떨어진 공에 백스핀이 걸려 갑자기 멈춰 버리자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순간 공의 위치를 놓쳐버린 선수들이 공을 찾아 헤매는 것이었다. 물론 몇 초 만에 공은 어떤 선수의 발에 걸리게 되었으나 잠깐 사이에 벌어진 술래잡기 같은 장면은 그들이 시각장애인임을 깨닫게 했다. 또다시 마음이 울컥하고 눈물이 핑 돌았다.
그날 오전 엘에이공항을 출발하여 일본 도쿄를 향해 비행을 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올림픽의 열기가 온 세상을 후끈 달아오르게 했었고, 비행 중에도 승객들에게 경기 결과를 전해주기 위해 본사에서 수도 없이 메시지가 왔었다. 그러나 이제 일상으로 돌아온 사람들은 패럴림픽이 열리는 사실조차 잘 모른다. 누구보다 올림픽에 열광적이던 우리나라가 패럴림픽을 더 외면하는 것 같아 미안함을 느꼈다.
그런데 문득 엉뚱한 생각이 들어 내 모습을 돌아보았다. 내가 그들과 다른 게 무엇인가? 나는 원래 하늘을 날지 못한다. 날지 못하는 내가 기계의 힘을 빌려 나는 것과, 걷지 못하는 사람이 기구의 힘을 빌려 달리는 것이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정상인의 올림픽이 인간 능력의 한계를 시험하는 것이라면, 조종사와 패럴림피언들은 ‘도구’를 사용하여 불가능에 도전하는 것이 아닌가? 아니, 패럴림피언뿐만 아니라 모든 장애인들의 삶 자체가 도전의 연속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그저 능력이 조금 다를 뿐인데, 비장애인이 게으름을 부리는 동안 장애인들은 매일매일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측은함의 눈물이 사라지고 그들이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그들은 도전하는 불굴의 파일럿이다. 헬렌 켈러와 호킹 박사는 위대한 캡틴이고, 무관심 속에서도 꿋꿋이 세상에 도전하는 장애우들은 모두 ‘비행소년’들이다.
신지수 대한항공 A330 조종사·<나의 아름다운 비행>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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