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11.21 18:08
수정 : 2012.11.22 14:10
[매거진 esc] 신 기장의 야간비행
도시에 살다 보면 달의 신비함을 잘 모른다. 도시의 불빛 아래 살면서 별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무심코 하늘을 보면 달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고, 모양도 볼 때마다 제각각이다.
하지만 비행을 하는 사람들은 달의 고마움을 누구보다 잘 안다. 달빛이 밝으면 지형과 구름의 윤곽이 잘 보이니 비행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야간비행을 할 때마다 달이 언제 뜨고, 모양은 어떤지 미리 알아본다. 첨단 비행기를 타면서 오히려 고대 점성가처럼 하늘을 쳐다보고 다니니, 재미있는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최근 내가 타는 A330 비행기가 중동, 아프리카 지역을 새롭게 운항하면서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다니기 시작했다.
한번은 밝은 보름달 아래에서 파키스탄과 중국 티베트 국경을 통해 히말라야를 넘은 적이 있다. 주변에 하얀 구름 같은 것이 눈에 들어와 조종실 불을 꺼보았는데, 그때 눈앞에 들어온 광경은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무시무시한 산들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었고, 구름이라고 생각한 하얀 덩어리는 히말라야의 만년설이었다. 흥분한 나는 세계지도를 얼른 꺼내어 보았다. 히말라야의 14좌 중 낭가파르바트(8125m)와 K2(8611m)를 볼 수 있었고, 신비로운 달빛에 차가운 그림자를 드리운 산 정상은 공포와 아름다움으로 나를 전율케 하였다. 인간이 자랑하는 날개 달린 기계에서 바라본 자연은 아직도 두려움과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달은 매일 다른 시간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밤샘 비행을 하며 동남아에서 서울로 돌아올 때, 밤늦게 동쪽에서 떠오르는 달은 지친 여행에 친절한 동행이 되어준다. 일찍 뜨는 두툼한 달은 앞길을 밝혀주고, 늦게 뜨는 날씬한 달은 고독함을 달래준다. 항상 비슷한 시각에 비슷한 모양으로 떠오르는 눈부신 해와는 전혀 다른 매력이다. 특히 새벽녘에 샛별과 함께 떠오르는 그믐달은 정말 아름답다. 수평선 위로 수줍게 떠오르는 요염한 자태에는 동양적인 아름다움이 있다.
사람이 도시에 살기 시작하면서 잃어버린 것이 참 많다. 강한 도시의 불빛 속에 달님과의 대화가 사라졌듯이, 오랫동안 함께해온 많은 아름다운 것들을 잊고 산다. 하지만 그리워할 필요는 없다. 그저 미안하다고 말하면 된다. 왜냐하면, 잊고 지내온 달빛이 하늘에서 없어진 것이 아니듯, 아름다운 것들은 모두 그 자리에 그대로 있기 때문이다. 우리 마음속에 아쉬워하는 것들은, 사실 우리를 떠나지 않고 다시 쳐다봐 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신지수 대한항공 A330 조종사·<나의 아름다운 비행>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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