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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12.05 17:42 수정 : 2012.12.08 13:32

[매거진 esc] 신 기장의 야간비행

초겨울이 되니 하늘에 철새들의 이동이 잦다. 화살 모양 대오를 그리며 저고도로 비행하는 철새들을 보면 부딪히지 않을까 여간 신경 쓰이지 않는다. 오래전에 한번 이륙하면서 유리창에 정통으로 새와 부딪힌 적이 있었다. 물풍선이 터지듯 새의 몸통은 낭자한 선혈을 뿜었고, 유리창에 깃털이 달라붙어 파르르 떨리는 모습을 쳐다보며 비행을 계속해야 했다. 새가 비행 안전에 위협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실 죽은 새는 또 무슨 죄인가.

비행하는 사람으로서, 철새들의 장거리 비행을 보면 놀랍고 존경스럽다. 공기의 저항을 줄이는 대오를 만들어 힘을 아낄 줄 알고, 나침반과 지도도 없이 길을 잘도 찾는다. 대오의 선두에서 차갑고 거센 공기를 막아내며 무리를 이끄는 리더의 모습은 정말 멋지다. 또한 리더가 지쳤을 때 쉴 수 있도록 선두 자리를 교대해주는 든든한 참모들의 모습은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정치의 계절이 돌아오니 ‘철새’ 하면 나쁜 뜻이 먼저 떠오른다. 정치가가 대중의 인기를 먹고 자라다 보니 인기가 아쉬운 정치가는 소속사를 옮기기도 하나 보다. 이번 대통령 선거도 결국은 팬층이 가장 두터운 두 장르로 정리되는 듯하다. 억척스럽게 일했던 개발세대는 경제발전의 업적을 폄하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고, 눈앞에서 선후배들이 쓰러져 죽어가는 것을 보아온 민주화세대 역시 선택은 간단하다. 두 격동기를 겪지 않은 젊은이들과 기존 장르에 실증을 느낀 사람들의 요구가 떠오르며 새로운 스타 탄생이 예고되었으나, 데뷔는 다음으로 미루어졌다. 짧은 시간 동안 역사도 참 많고, 생각도 참 많다.

정치가들은 철새를 나쁘게 비유하지만, 나는 동의할 수 없다. 철새의 리더는 무리를 위해 앞서 헌신하고, 참모는 리더가 바른 방향을 가도록 보좌한다. 매번 긴 여행을 하지만 고난의 여정 끝에는 무리가 모두 차별 없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행복이 기다리고 있다. 어리고 몸이 약한 새들에게는 힘에 겨운 비행이지만, 동료의 도움으로 꼭 성공해내고 만다. 철새들의 비행이란 화려한 빛을 좇는 욕심과 허영이 아니라, 모두의 행복을 찾아 떠나는 고귀하고 아름다운 여행인 것이다. 때론 어려움이 있어도, 그들이 향하는 방향은 수천, 수만년이 지나도 나침반처럼 분명하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나는 ‘철새’ 같은 후보를 선택하려 한다. 분명히 그런 후보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아쉽게도 비행 일정 때문에 이번에는 부재자투표를 해야 하지만, 먼저 하늘에 올라가 길고 아름다운 비행을 응원하겠다. 무리에서 낙오하여 뒤늦게 쓰레기통을 뒤지는 철새가 되어서야 쓰겠는가?

신지수 대한항공 A330 조종사·<나의 아름다운 비행>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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