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1.16 18:01
수정 : 2013.01.16 18:01
[매거진 esc] 신 기장의 야간비행
오랜만에 옛 친구들과 함께 저녁을 먹는데 한 친구가 대뜸 이런 질문을 했다. “비행기 조종은 자동차 운전과 많이 달라? 배우면 누구든지 할 수 있는 거야?” 나는 내 생각대로 대답해주었다. “자동차도, 비행기도, 마징가제트도 모두 사람이 조종하도록 만들어진 거야. 움직이는 방법은 서로 다르지만, 물리적인 기본 개념은 비슷해. 누구나 배우면 조종사가 될 수 있어.” 이렇게 말하니 질문한 친구도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였다. 복잡한 스위치로 가득 찬 조종실을 떠올리면 비행이란 뭔가 대단한 일일 것 같은데, 누구나 배우면 할 수 있는 자동차 운전과 같은 것이라고 하니 아마도 반갑게 느껴졌나 보다.
집에 가는 길에 그 친구의 차를 얻어 탔다. 그런데 차가 막혀서인지 운전이 신경질적이었다. 함부로 차선을 바꾸었고 안전지대도 침범했다. 점잖은 차한테는 양보를 하지 않았으며, 꼬리를 물고 사거리를 점령하여 교통체증에 큰 보탬이 되었다. 문제는 이런 차가 한두 대가 아니란 점이다. 규칙을 지키며 운전하는 사람에게 돌아오는 것은 끓어오르는 분노와 불의에 무릎을 꿇은 패배감뿐이었다. 아이러니한 점은, 이렇게 나쁘게 운전하는 사람들이 모두 나쁜 사람이 아니더란 사실이다. 운전을 ‘그따위’로 한 내 친구도 어디서나 칭찬받는 착한 소시민이었다. 비행기 조종에는 에어맨십(Airmanship)이란 것이 있다. 그냥 매너 좋게 비행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 단어 속에는 파일럿의 자존심이 새겨져 있다. 넓은 시야로 전체적인 흐름을 보고, 어떤 상황에서도 확신에 찬 올바른 의사결정을 내리게 하여 모두 함께 안전하게 비행하도록 하는 훌륭한 정신이다. 그리고 그 뿌리 속에는 기술, 지식, 경험으로 축적된 단단한 기본과 철학이 있다.
다시 대답하지만, 비행기 조종은 누구나 배우면 자동차 운전처럼 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의 운전을 한번 되돌아보라. 자존심을 걸고 운전하고 있는가? 도로교통법과 자동차 매뉴얼에 밑줄 그으며 공부하고 있는가? 약자를 배려하고 양보하는가? 내 차를 아끼고 살피는가? 내 차에 탄 승객에게 무한책임을 느끼는가? 모두 “예”라고 대답할 수 있으면 누구나 훌륭한 조종사가 될 수 있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깃발 나부끼는 정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땅에 묻혀 보이지 않는 기본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두가지 나라가 있다. 하나는 차가 사람을 피하는 나라이고, 또 하나는 사람이 차를 피하는 나라이다. 아쉽게도 우리나라는 아직도 사람이 차를 피하는 나라이다. 약자가 강자에게 길을 내주는 나라란 말이다. 정말 분하고 자존심 상하지 않는가?
신지수 대한항공 A330 조종사·<나의 아름다운 비행> 저자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