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3.01.30 18:36 수정 : 2013.01.30 18:36

[매거진 esc] 신 기장의 야간비행

무심코 밤하늘을 보았을 때 갑자기 별똥별이 떨어지면 마음이 다급해진다. 뭔가 소원을 빨리 빌어야 할 텐데 머릿속이 하얘진다. 결국 별똥별은 금세 꼬리를 감추어 버리고, 나는 “어… 어…” 하고 추임새만 넣다가 닭 쫓던 개처럼 허탈하게 하늘을 쳐다본다. 뒤늦게 마음의 준비를 하고 또 떨어지는 별이 있는지 한참을 기다려 보지만 촘촘히 박힌 별 중 어느 것 하나 떨어지는 녀석이 없다. 별똥별이 떨어질 때 소원을 말하면 이루어진다는데, 이거 너무 어려운 미션 아닌가?

조종사가 되어 야간비행을 자주 하다 보니 별똥별을 볼 기회도 훨씬 많아졌다. 요령이 쌓이고 꾸준히 연습하니 몇 년 뒤에는 소원이 조건반사처럼 튀어나왔다.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소원은 간단하게 하나로 통일했다. “부자 되게 해주세요!” 이제는 서부의 사나이처럼 누구보다 빠르게 총을 빼내어 떨어지는 표적을 맞힐 자신이 생겼다.

하지만 이게 뭐야? 아무리 성공을 많이 해도 좀처럼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앞뒤가 맞지 않았다. 그 소원은 애초에 이루어질 수가 없었다. 월급쟁이가 무슨 수로 부자가 되나? 그리고 얼마나 많은 돈을 가져야 부자라고 말할 수 있는가? 간절함도 개념도 없이 개가 종소리에 침 흘리듯 소원을 되뇌는데, 이를 들어주실 하느님이 도대체 어디에 있겠는가? 그때부터 나는 좀더 간절하고 구체적인 소원을 찾기 시작했다. 아이들 공부 잘하게 해달라? 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도록 해달라? 우리의 소원은 통일? 아니면 미워 죽겠는 아무개 혼 좀 내달라? 아무리 생각해도 적당한 소원이 떠오르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나는 여태까지 특별히 무엇을 간절하게 원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도대체 얼마나 개념 없이 살았길래 나란 인간은 원대한 포부나 소중한 꿈도 없단 말인가? 하지만 그것은 한심하다고 비웃을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마음 깊이 고마워해야 할 일이었다. 내 소원이 선뜻 생각나지 않은 것은 그만큼 내가 행복하기 때문이었다.

내 아이를 살려주세요, 어머니가 보고 싶어요, 굶지 않게, 아프지 않게, 때리지 말게 해주세요! 세상에 간절하고 처절한 기도가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그들의 소원이 별똥별 떨어질 때마다 하나씩 이루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오늘도 조종실에서 아까운 별똥별 몇 개를 보내고서 드디어 소원을 정했다. 이제부터 별똥별이 떨어질 때마다, 그리고 지니든 소녀시대든 누가 물어보더라도 거침없이 외칠 수 있도록 맹연습할 것이다. “다음 분 먼저!”

신지수 대한항공 A330 조종사·<나의 아름다운 비행> 저자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신 기장의 야간비행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