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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3.27 18:34 수정 : 2013.03.27 18:34

[매거진 esc] 신 기장의 야간비행

인도 뭄바이로 비행을 가는데 중국에서 대대적인 군사훈련을 한다는 정보를 받았다. 일본과의 영토 분쟁으로 동중국해가 바짝 긴장하고 있나 보다. 민항기 운항에는 별 상관이 없지만, 소련 영공에서 피격당한 007편을 기억하면 기분이 좋지 않다. 중국과 미얀마를 지나 방글라데시로 넘어오자 항로 위에 큰 구름이 나타났다. 구름을 피하고자 다카 관제소의 허가를 받아 항로를 빠져나왔는데, 갑자기 인도 콜카타 관제소에서 우리를 불렀다. “왜 항로를 이탈했는가?” 상황을 설명해주고 나니 좀 화가 났다. 방글라데시 영공에서 인도가 웬 간섭인가? 그도 그럴 것이, 인도 주변에는 분쟁지역이 많다. 서부 히말라야의 잠무카슈미르(Jammu and Kashmir)는 유엔이 인도의 영토임을 인정했지만, 아직도 파키스탄은 이곳을 분쟁지역으로 선포하고 있다. 거꾸로 인도는, 중국 영토인 아커사이친(Aksai Chin)을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곳을 지날 때에는 양쪽 관제소와 비상 주파수까지 여러 라디오 채널을 동시에 주의 깊게 들어야 한다. 고래들의 힘자랑에 새우 등 터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또 다른 대표 모노폴리 경기장은 유라시아 지역이다. 지중해 동북부 지역은 지금도 터키와 키프로스가 영공과 영해를 두고 분쟁중이다. 공식적으로 이 지역은 키프로스 니코시아 관제소 관할이지만, 터키 앙카라 관제소가 관제를 넘겨주지 않아 양쪽의 관제를 동시에 받아야 한다. 이스라엘 텔아비브로 갈 때 이곳을 지나는데, 앙카라에서 애국심 많은 관제사가 일부러 이런저런 지시를 내리면 시키는 대로 하기도, 안 하기도 참 애매하다. 한번은 평화주의 관제사를 만나 순조롭게 이곳을 지나는 것 같았는데, 갑자기 비상주파수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여기는 유에스에스(USS) ×××, 레이더 코드 ×××× 항공기는 응답하라!” 우리를 부르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 대답하니 낮은 목소리로 목적지를 대라고 했다. 지중해에 주둔하는 미국 전함이었는데, 괜히 지나가는 민항기 겁주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 이스라엘의 레이더 감시 구역에 들어가면 더 삭막하다. 보안 절차상 이 지역에서는 모든 승객이 좌석벨트를 매고 있어야 한다. 화장실도 못 간다. 나는 진입 30분 전에 이 절차를 설명하고 미리 화장실에 다녀오라고 했다.

요새 우리 회사에 부쩍 일본인 조종사가 많아졌다. 그중에는 자위대에서 일본 영공을 지키다 온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마주칠 때마다 ‘독도는 누구 땅이냐?’고 묻고 싶은 충동이 드는데, 매번 참는다. 하늘을 날 때는 승무원도, 승객도 절대 화를 내면 안 된다. 사람이 자유롭게 날 수 있는 조건은 ‘평화’이기 때문이다. 인기 게임 ‘앵그리버드’를 보라. 성난 새는 바닥에 추락한다.

신지수 대한항공 A330 조종사·<나의 아름다운 비행>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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