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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2.29 18:41 수정 : 2012.02.29 18:41

[매거진 esc] 기계적 삶

우직하게 사람을 맞이하는 ‘센서 전등’

현관을 밝히던 전등이 고장났다. 현관 전등의 ‘의문사’는 최근 1년 사이 두 번째다. 사람이 자주 들락날락하는 집도 아닌데, 유독 반년도 못 버티고 이내 고장이 나기 일쑤다. 이번에는 사망 현장도 직접 목격했다. 보름 전, 현관문 열면 어김없이 노란 불빛을 밝히던 전등이 푸쉬식 신음 소리와 함께 빨간 불빛을 토해냈다. 현장 검증을 위해, 의자를 딛고 올라가 전등갓을 벗겼다. 전구는 멀쩡해 보였고, 다른 건 봐도 모르겠다. 그치? 이거 사람 불러야 돼!

미국드라마 <캐슬>의 남자 주인공처럼 미비한 기계적 육감을 발휘해 전등의 사인을 추적했다. ‘빨간 불빛은 분명 전등이 아닌 센서에서 뿜어져 나왔지’, ‘전구가 나갔다면 이렇게 우윳빛을 띠고 있을 수 없어….’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당당히 전화를 걸었다. “아, 전구 나간 게 아니라니까요! 확실하다니까요, 전등에 달린 센서 고장 맞다고요!”

새 부품 사오는 건 우리 몫이란다. 집 근처 전파상에서 플라스틱 머리에 문어발처럼 전선이 달린 센서 부품을 사왔다. 머리 부분에 벌집처럼 생긴 동그란 램프가 있다. 이 센서가 사람 몸에서 내뿜는 적외선을 감지하면 전류를 흘려보내 불을 밝힌단다. 그 대신 일정 시간만 켜지도록 돼 있다. 그래서 열선 방식의 전자식 스위치라고도 부른단다. 아파트 입구 엘리베이터 앞이나 복도, 심지어 남자 화장실 소변기에도 센서가 있다. 센서 부품의 뒷면에는 ‘3m 높이 천장에서 반경 1.5m 이내를 감지한다’고 쓰여 있다.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나를 보고도 쓸데없이 불을 밝혔던 이유도 바로 이 작동 반경 때문이었다. 몰랐던 사실 하나. 두 가지 모드를 선택해 사람을 감지하는 범위도 정할 수 있단다. 옆에 달린 해와 달 그림이 그려져 있는 버튼이 그것이다. 해 모양으로 해두면, 낮과 밤 상관없이 사람이 들락날락하면 무조건 불을 밝히고, 달 모양은 밝을 때는 잠자코 있다가 어두울 때만 작동하게 만들 수 있다.

생각해보면, 센서 전등처럼 우리를 늘 반갑게 맞이하는 존재도 없는 듯하다. 고장난 전등 탓에 며칠 동안 캄캄한 현관을 더듬는 일이 참 우울하게 느껴지는 걸 보면 그렇다. 꼬리치며 반기던 강아지가 가출한 것만 같은 허전함도 밀려온다. 콘크리트처럼 삭막한 도시 사람들 사이에서 센서 전등은 말 없는 의사소통의 도구이기도 하다. 깊은 새벽 창문 너머로 불을 밝히는 아파트 복도 센서 전등을 보며, 옆집 아저씨의 고된 하루를 짐작해보고, 낯선 이웃과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불 꺼진 센서 전등을 향해 손을 휘휘 저으며 어색할 겨를을 잠시나마 피하기도 한다. 층층이 계단 센서 전등을 밝히며 집으로 향하는 여자친구의 모습은 그 남자에게는 세상 무엇보다도 멋진 배경 조명일지도 모른다.

센서 전등을 보며 온갖 상상을 펼치던 즈음, 현관 전등을 고치던 관리사무소 아저씨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참, 전구만 갈면 될 일을 왜 사람까지 부르고 그래요?” 아이구, 죄송해요 아저씨. 그냥 전등 보고 우리 한번 씨익 웃으면 안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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