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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3.28 18:24 수정 : 2012.03.28 18:24

[매거진 esc] 기계적 삶

즉석 인화 카메라, 폴라로이드

나는 3년 전부터 ‘즉석 인화 카메라’를 쓰고 있다. 이 카메라가 가장 매력적일 때는 바로 사진 찍은 뒤다. 지이잉 둔탁한 소리를 내며 뽑혀 나오는 인화지를 보고 있노라면, 아날로그 기계 특유의 냄새가 가득 느껴지는 듯하다. 그 가운데에도 새하얀 인화지에 상이 맺혀 오르는 그 1분 동안의 시간은 묘한 긴장감을 불러온다. 잘 찍혔을까? 눈은 감지 않았을까? 잘못 찍혔으면 어떡하지?(=필름 한 장 값이 얼만데!) 등등. 이 때문에 사진 찍어달라며 달려오는 조카들의 아우성 앞에서, 필름 값을 생각하며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애써 숨기며 태연한 척하기도 했다.

‘인스탁스 미니 7S’. 김성환 기자 제공
내가 쓰는 즉석 인화 카메라는 일본 후지사가 만든 ‘인스탁스 미니 7S’다.(사진) 그러나 지퍼와 봉고라는 브랜드가 상품을 뜻하는 보통명사처럼 여겨지듯이, 원래 즉석 인화 카메라의 원조는 폴라로이드였다. 1946년, 미국 폴라로이드사 설립자였던 에드윈 랜드가 처음 만든 자체 현상 카메라 ‘폴라로이드 모델 95’를 시작으로 폴라로이드사가 다양한 제품을 생산해왔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서 직접 사진을 뽑아 볼 수 있다는 매력 때문에 한때 폴라로이드 카메라는 큰 인기를 끌었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디지털카메라의 인기에 밀려 더이상 즉석 인화 카메라 필름을 생산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뒤늦게 디지털카메라 시장에 눈을 돌린 폴라로이드사는 아예 ‘즉석 디지털카메라’를 생산하고 있다. 보통의 디지털카메라처럼 액정화면장치(LCD)로 사진을 확인한 뒤, 이 가운데 선택을 하면 ‘포토 프린터’처럼 카메라에서 사진이 나오는 제품이다. 폴라로이드의 옛 추억에 기대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즉석 디카로도 따라잡을 수 없는 즉석 인화 카메라만의 매력은 다양하다. 우선, 초점 따위 없는 원초적인 카메라의 작동 원리! 그저 상에 비치는 모습을 담는 것이기에 즉석 인화 카메라에는 디에스엘아르(DSLR)에서 쓰는 배경 화면을 희미하게 만드는 ‘아웃 포커싱’이나 셔터 속도 조작 등의 복잡한 기술은 필요없다. 그저 뷰파인더에 새겨진 동그라미와 네모 구역 안에 찍고 싶은 것을 담으면 끝이다.

기계의 작동 원리도 솔직하다. 플라스틱 재질로 엉성하다고까지 느껴질 정도로 가벼운 카메라 속 구조는 필름을 끼워 넣는 자리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게다가 건전지 4개가 들어갈 정도로 무식한(?) 구조도 예전의 필름 카메라를 보는 듯해 정감이 간다.

그런데 요즘 이놈이 말썽이다. 애지중지하려고 가방까지 사서 입히고, 책상 아래 깊숙이 모셔두었건만 오랜만에 꺼낸 카메라가 도통 제 기능을 못한다. 인화지에 찍혀 나온 코가 사라진 내 얼굴은 온통 희미해 마치 50년 전 앨범에 있던 빛바랜 사진 같다. 즉석 인화 카메라의 무능함을 탓하려던 무렵, 열과는 상극이라는 카메라 필름을 따뜻한 방바닥 위에서 2년 넘게 겨울을 보내게 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래, 즉석 인화 카메라야. 넌 역시 정직한 물건이었어.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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