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4.11 18:47
수정 : 2012.04.13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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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환 기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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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기계적 삶
좌충우돌 망치질 득음 체험기
이사철이다. 아파트 단지에는 간지러운 봄햇살과 함께 이사용 고가사다리차도 함께 찾아왔다. 한나절 동안 사다리차의 굉음이 지나가면, 저녁에는 어김없이 새집에 못 박는 소리가 이어진다. 텅. 텅. 텅. 박자를 맞춰 아파트 복도에 울려퍼지는 망치와 못대가리의 합주를 반쯤 감긴 눈으로 듣다 보면 마치 정체 모를 아프리카 민속 타악기의 연주 소리처럼 들리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아프리카 민속 타악기를 닮은 망치 소리는 그나마 들어줄 만하다. 1년 전 처음 이사 왔을 때, 우리 집에서 내뿜었던 외계의 소리보다는 아름다웠으니 말이다. 망치 한 자루로 단단한 콘크리트벽과의 대결에서 실패한 뒤, 전동드릴을 주말 밤 내내 하염없이 벽에 밀어댔다. 그날 새로 맞이한 이웃들에게는 금속 못과 콘크리트의 소름 돋는 불규칙한 파열음을, 우리 가족에게는 달궈진 금속 못의 매캐한 냄새를 아쉬움 없이 선사했다. 냄새가 진해질수록 못대가리는 망가져갔고, 바닥에는 애꿎은 콘크리트 가루만 쌓여갔다.
‘망치질도 배워야 되는 거야?’ 이런 생각이 스쳐갈 즈음, 그리고 아내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할 즈음, 그리고 옆집에서 쿵 하며 신경질적으로 벽을 세차게 걷어찰 때쯤, 비로소 내가 망치질에 영 소질이 없다는 사실도 함께 깨달았다. 그 덕에 우리 집 벽은 덩그러니 걸린 시계 말고는 못을 찾아볼 수 없는 ‘망치질 청정지역’이 됐다. 휑한 거실을 의아하게 바라보는 이들에게는 “2012년 최첨단 인테리어의 대세는 액자를 바닥에 내려두는 게지”라며 허세를 부리며 둘러댔다.
그렇게 망치질과의 인연이 멀어지는 듯했지만, 다시 새해가 밝고 새 달력을 걸 곳이 필요하게 됐다. 못 하나 박으려고 사람 부르기에는 ‘남자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터, 인터넷에 ‘못 잘 박는 법’을 몰래 찾아봤다. 역시나 망치질에도 노하우가 있었다. 툭턱 툭턱. 못 박을 구멍을 살포시 파 두고, 강약을 주는 4분의 2박자로 내리쳐야 제대로 박힌다는 것이다. 또 물에 적신 휴지를 벽에 대고 못을 박거나 플라이어·빗 등 공구를 활용하면 못 박는 구멍이 빗나갈 가능성도 훨씬 줄어든단다.
그러나 망치질에서 가장 중요한 건, 뭐니뭐니해도 자신감인 듯하다. ‘내 너를 기필코 제압하리라’고 되뇌며 강약을 두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망치를 시원하게 내리칠 수 있는 그 자신감 말이다. ‘못 잘 박는 법’ 검색 결과를 곧바로 실천에 옮겼다. 텅. 텅. 텅. 텅. 퉁텅, 퉁텅…. 망치질에 속도를 붙였다. ‘강약, 강약.’ 클럽 디제이(DJ)처럼 속으로 박자를 세며 악기를 두드리듯 망치를 휘둘렀다. 못이 얌전히 벽 속으로 몸을 밀어넣기 시작했다.
이쯤 되면 망치질도 가히 예술행위 수준인 듯하다. 그러고 보니 아프리카 민속음악을 연주할 줄 아는 새 이웃의 망치질 실력이 떠오르며 뒤늦게 숙연해진다. 심지어 파울루 코엘류도 소설 <알레프>에서 망치질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렇게 무수한 반복을 하다 보면, 내가 생각하지 않아도 그냥 내 손이 이끄는 대로 때리는 때가 오지.” 나도 그런 때가 오겠지? 그렇다면 그때에는 기필코 욕실 타일 위에 못을 박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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