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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5.16 17:40 수정 : 2012.05.16 17:40

김성환 기자

[매거진 esc] 기계적 삶
여전히 어려운 인터넷 동영상과 자막 싱크의 비밀

대학생 시절, 열심히 시디(CD)를 구워대던 때가 있었다. 영화학 교수님 연구실의 한쪽 벽에 가득했던 비디오테이프 자료를 보고 나서였다. 비디오가게 뺨치던 모습을 보고 난 뒤 ‘내 방도 나만의 영화 아카이브로 가득 채우리라’ 다짐하면서 시작한 일이었다. 먼저 중국산 시디 한 뭉텅이를 샀다. 그리고 ‘어둠의 경로’(불법 다운로드)로 얻은 각종 고전 영화의 동영상 파일을 밤새 컴퓨터로 구웠다. 그 교수님에게는 “비디오테이프를 디지털 자료로 만들어 드리겠사와요” 하며 빼내온 자료를 들고 방송반 학생에게 가 나의 아카이브용 시디를 만들기도 했다. 말은 거창했지만, 비디오테이프를 시디로 만들려면 영화 상영 시간만큼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야만 했다. 그러나 아카이브 완성을 위한 나의 ‘물욕’은 지루함을 충분히 극복하고도 남았다. 암튼, 그랬다.

그런데 어둠의 경로로 얻은 동영상 파일은 꼭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코덱을 찾을 수 없다는 둥, 지원하는 동영상 파일이 아니라는 둥. 인고의 다운로드 시간을 기다려 받아든 결과에 늘 절망하곤 했다. 컴퓨터 잘 다루게 생긴 공대생 친구에게 물어보면 해괴한 설명만 돌아왔다. 동영상 파일을 둘러싼 고차원적인 문제는 해결할 줄 몰랐지만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동영상과 자막은 같은 파일 이름을 써야 한다는 것!

그 뒤 나의 영화 아카이브 사업은 취업전선에 투입되면서 소리 없이 좌초됐다. 이제는 시디 플레이어 없는 노트북을 쓰는 시대라 어둠의 경로로 얻는 영화에 대한 흥미도 뚝 떨어졌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최근 어둠의 경로로 태어난 몇 개의 최신 영화 동영상이 내 손에 들어오면서, 오래전 잠들어 있던 나의 영화를 향한 ‘물욕’도 함께 되살아났다. 노트북을 티브이와 연결해주는 ‘고선명 멀티미디어 인터페이스’(HDMI) 케이블까지 동원해 동영상 파일을 트니, 영화관이 부럽지 않았다. ‘이참에 못다 한 영화 아카이브를 만들어볼까.’ 그래, 그럴까, 그래도 되겠지, 뭐 누가 알겠어.

그러나 역시 세상에 거저 먹는 열매는 없었다. 편안한 소파에 자리를 잡고 튼 할리우드 액션 영화가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다. 영화에 한창 빠져들 즈음인 20분 정도가 지나자, 자막이 뭔가 이상했다. 자막과 동영상의 속도가 안 맞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활짝 웃으며 농담을 주고받는 주인공들 모습 밑으로 “야, 너 왜 이래? 제정신이야?”라는 심각하기 짝이 없는 자막이 흘렀다. 몇십분 동안 컴퓨터와 씨름한 뒤에, 동영상 재생 프로그램에 있는 ‘자막 탐색기’ 기능으로 영화 장면과 자막 내용을 맞춰야 했다. 영화 장면보다 40초 느린 자막을 앞당겨서 맞춘 뒤, 다시 재생. 오호, 나의 끈기로 동영상 파일을 이기리라.

하지만 5분도 채 되지 않아, 화면과 자막은 다시 엇박자가 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동영상 자막과 씨름을 하기를 어언 5번. 결국 뒤죽박죽 망가진 자막을 과감히 포기하고 영화를 보기로 했다. 하지만 역시 영어 대사는 도통 뭔 소리인지 들리지 않았다. 그래, 기계치에게 꼼수는 어울리지 않는 법. 여러분, 저도 이제부터는 ‘굿 다운로더’가 되겠나이다.

기계적 삶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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