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5.30 18:06
수정 : 2012.05.30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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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피디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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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기계적 삶
주말농장 삽질과 기계적 삶
나는 삽질을 잘 못한다. 뭐, 인생의 삽질은 잘했는데, 진짜 ‘삽질’에는 영 소질이 없다. 삽질에는 근력과 지구력, 그리고 집중력이 필요하다는데… 영 서툴다. 이등병 시절, 막사 앞 버드나무 뿌리를 캐내며 어설픈 삽질을 해대다 삽으로 맞을 뻔한 적이 있을 정도다.
얼마 전 다시 삽자루를 쥐었다. 아버지의 텃밭에 ‘무임금 일용직’으로 징집됐기 때문이다. 반나절 넘게 고구마 심을 고랑을 만들었다. 허리를 굽힌 채 삽날을 깊숙이 찔러넣고 흙을 퍼 올리는 삽질은 처음엔 순조로웠다. 하지만 이내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등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삽에 담기는 흙의 양은 얄궂을 만큼 줄어들었다. 비 오듯 땀이 쏟아지고 운동화에 흙이 가득 차는 것도 모자라, 바지 뒷주머니까지 흙이 찼다. 삽을 든 채 멍하게 서 있는 내 모습 뒤로 아버지가 혀를 끌끌 차며 서 계셨다.
삽질 근육통이 풀릴 무렵, 회사 선배 여럿이 모여 농사를 짓는 북한산 자락 주말농장을 찾았다. 푸른 5월의 밭에서 자란 풀을 뜯어 고기를 싸먹기 위해 모인 자리였기에, 이곳은 삽질 없는 주말농장이었다. 고기를 우물우물 씹으며 비스듬히 앉아 농장을 둘러봤다. 다들 나뭇가지를 엮어 오이 덩굴을 세우고, 고추밭에 긴 막대를 단단히 꽂아 넣느라 분주하다. 누군가는 농장 한편에 빼곡히 걸려 있는 삽을 들고 밭으로 향했다. 역시 삽질은 중요하다. 갑자기 삽머리가 라커룸에서 몸을 푸는 종합격투기 선수처럼 보였다.
주말농장을 다녀오니 더욱 삽질의 자신감이 떨어졌다. 인터넷에 ‘삽질’을 검색해봐도 온통 ‘4대강 삽질’ 이야기뿐이다. 그래서 최근 난 ‘꽃삽질’로 전향하기로 했다. 짧고 가는 꽃삽에는 근력 따위는 필요치 않기 때문이다. 나름 자신감도 얻었다. 얼마 전, 누런 잎을 흩날리며 바싹 마른 가지를 뻗어 구원의 손길을 내밀던 집안 화분의 분갈이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꽃삽으로 말끔히 도려낸 화분 뿌리에는 사하라 사막에서나 봄직한 마른 흙이 가득했다. 비료가 섞인 진한 흙을 섞어 담았더니, 화분의 풀들이 이내 살아났다. 비료 섞인 흙의 진한 냄새는 주말농장에서 맡았던 냄새 같았다. 마치 삽질로 밭 한 고랑을 퍼낸 것 같은 뿌듯함이 밀려왔다.
(비록 꽃삽이지만) 삽질의 짜릿함은 전등을 고치고 못을 깔끔하게 박았을 때의 희열과는 확실히 다르다. 삽날 금속이 흙을 파고들고, 흙은 삽머리를 감싸안는다. 마치 외과의사가 새 생명을 불어넣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금속과 플라스틱을 매만지는 느낌과 다르다. 일상 속에서 사소한 것을 만들며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 끊임없이 기계를 만지작거리는 것보다 한 차원 높은 게 바로 삽질이다. 그래서 난 오늘도 삽자루를 움켜쥔다.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또다른 화분을 향해 나아가리라. 나의 (꽃)삽질이여, 영원하라. <끝>
기계적 삶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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