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2.02.16 11:49 수정 : 2012.02.16 11:49

프로젝트 헬베티카

[매거진 esc] 디자인 큐레이팅

아이폰 기본 서체 ‘헬베티카’를 기념하는 다큐멘터리와 책 프로젝트

대학시절, 리포트를 작성하며 내용만큼이나 심혈을 기울인 순간이 있었으니 바로 ‘글꼴 고르기’였다. 디자인과가 아니었지만 리포트를 제출할 때 한참 동안 글꼴 사이를 헤맸다. 그래 봤자 몇몇 서체들을 왔다갔다 하는 정도였지만 여러 가지 타입을 대입해보고 내용에 맞는 글꼴을 고르는 것은 꽤 중요했다. 돌이켜보면 글꼴이 글의 내용에 어떤 ‘인상’을 부여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마치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의 ‘말투’처럼.

우리는 많은 글꼴들 사이에서 생활한다. 하지만 그저 노출되어 있을 뿐 각자 어떤 취향을 가지고 있기에는 타이포그래피의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한 서체의 탄생을 기념하는 외국의 이야기는 생경하다. 기념 다큐멘터리뿐만 아니라 전시회, 한정판 디자인 제품까지 이 모든 것이 한 서체의 탄생 50주년 기념 퍼포먼스였으니 그 주인공은 바로 ‘헬베티카’(Helvetica).

그래픽 디자이너들에게는 익숙하다 못해 뻔한 이름이지만(아이폰의 기본 서체이기도 하다) 일반인들에게 영 낯선 이 서체는 스위스에서 탄생한 중립적인 이미지의 글자체다. 헬베티카는 본래 노이에 하스 그로테스크라는 이름으로 1957년 스위스 디자이너 막스 미딩거에 의해 탄생했다. 이후 라틴어로 스위스인의 조상인 켈트족의 한 갈래였던 ‘헬베티아’(Helvetia)족에서 이름을 따와 지금의 명칭을 얻게 되었다. 뉴욕의 지하철 사인이나 출입문의 ‘PULL/PUSH’ 표기에서부터 포스트잇, 베엠베(BMW)의 로고까지 생활 곳곳에 포진해 있다. 탄생 50돌이 되던 2007년,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영화감독인 게리 허스트윗은 헬베티카에 대해 70여명에 이르는 디자이너 및 유관자들을 인터뷰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한 평범한 활자 주조공이 만든 글꼴이 어떻게 반세기 만에 전세계 시각문화를 지배하게 되었는지 탐구해 간다. 2007년 3월 처음 상영을 한 이래 세계 영화제와 디자인 행사 등을 순회하며 인기를 얻었다.

최근 이 영화를 고스란히 지면에 담은 프로젝트가 진행되어 주목을 끈다. 한 대학의 대학원생들과 시각디자인과 학생들이 만든 이 책(사진)은 1시간20분 남짓한 영상을 한 권의 책으로 옮기며 매체간의 특징을 연구한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영화의 장면 번호, 러닝타임, 영문 사운드 텍스트, 국문 사운드 텍스트, 발화자(등장인물) 심벌, 소리 파동 등이 페이지의 구성요소가 되어 영화가 가지는 시각적, 청각적 요소와 시간의 흐름을 고스란히 전한다. 문맥에 따라 폰트 크기와 배열을 달리하는 책 속 타이포그래피는 영화의 생동감을 다른 방식으로 느끼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소리로 사라지는 영화 속 이야기들이 다이내믹한 전개를 선사했다면 텍스트로 고정되는 책 속 이야기들은 읽는 이로 하여금 생각을 확장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공감각적 심상을 품은 책 <헬베티카>는 평소 서체나 디자인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꽤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에리크 슈피커만, 매슈 카터 등 유명한 디자이너들이 다수 등장해 소장하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을 만한 책이기도 하다.

김선미 디자인 칼럼니스트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디자인 큐레이팅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