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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4.25 17:38 수정 : 2012.04.25 17:38

[매거진 esc] 디자인 큐레이팅

예술과 기능의 성역에서 내려와 디자인에 대해 소통하기 시작한 디자이너들

비가 내리던 지난 21일 토요일 저녁 7시, 서울 홍익대 근처에 위치한 어느 디자인 스튜디오에서는 병맥주를 손에 든 다섯명의 남녀가 자신들의 ‘분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한글 서체 개발에 대한 무관심에 분노의 날을 세우기도 했고 디자인계에 흐르는 엘리트주의에 대해 독설을 퍼붓기도 했다. 약간의 취기 때문인지, 창가를 툭툭거리던 빗방울 때문인지 시간이 좀 흐르자 ‘자신의 가치관과 현실의 차이’ 같은 좀더 본질적인 분노까지. 이야기는 무르익었다.

게스트로 초대된 인터랙션 디자이너 정기원은 디자이너로서 미국에서의 생활, 마이크로소프트사, 엠아이티(MIT) 미디어랩, 세계적 디자인 기업 아이디오(IDEO)에서 근무했던 경험담을 예로 들며 본인이 느꼈던 분노와, 이에 대한 흥미로운 대안들로 이야기의 균형을 맞췄다.

이 토요일 밤의 후끈한 현장은 공식적으로는 23번째 열린 ‘디자인 말하기’ 모임이다. 매회 다른 주제로 진행되며 인터넷 팟캐스트를 통해 일반인들에게 공개되고 있다. 필자를 비롯해 일간지 아트디렉터 윤여경, 시각디자인과 교수 이지원,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대표 김의래로 구성된 고정 패널들은 디자인 문화 비평 사이트인 ‘디자인 읽기’(designersreading.com)를 운영하며 오프라인으로는 ‘디자인 말하기’ 모임을 이어왔다. 일단 우리 스스로 재미있을 것, 너무 심각하거나 현학적으로 흐르지 말 것과 같은 전제 아래 친구들끼리 수다를 떠는 것처럼 말하기 모임을 진행해왔다. 시비를 가리자는 것이 아니라, 그저 디자이너들이 주체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스스로의 목소리를 냈으면 하는 바람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형식은 자유롭다. 사이트 대문에서 머뭇거리는 디자이너에게 이렇게 손을 내민다. “디자인, 문화, 삶에 대한 생각이 모여드는 곳, 서로의 생각을 읽고, 말하고, 행동하는 곳, 디자인 읽기는 누구나 참여가능한 즐거운 소통의 장입니다.”

디자인 읽기가 텍스트를 기반한 소통의 장이라면 사이트 ‘잔치’(janchi.in)는 실제 작업물을 통해 소통하는 곳이다. 건축가 하태석과 큐레이터 허서정이 주축이 되어 만든 잔치는 다학제적, 융합적인 방법론으로 새로운 예술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얼마 전 100일 잔치도 열었다. 그동안 참여해 온 43명의 크리에이터가 원하는 내용을 원하는 형식을 통해 직접 프레젠테이션했다. 디자이너부터 미디어 아티스트, 건축가 등 다양한 분야의 크리에이터들의 생각들이 소통되고 있어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곳이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기업의 프레임이 아닌, 디자이너 또는 디자인 유관자들이 자발적으로 디자인 담론을 형성하고 서로 토론하는 장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글이나 말보다는 시각적인 접근이 더 빠르고 능한 디자이너들의 태생적 속성도 있겠지만 사실상 대한민국에서 ‘디자인’이라는 분야가 급속히 고도화된 산업화의 부산물로 발전해왔기 때문에 인식의 단계가 순차적이지 못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디자인 읽기는 운영 방식을 리뉴얼한 시즌 2를 앞두고 있다. 디자인 말하기는 여전히 다양한 당대의 이슈들에 대해 ‘디자인적인 시각’으로 리얼 토크를 감행할 것이다. 디자이너들의 목소리가 희미해진 대한민국 디자인 사회에 다양한 방식의 ‘수다’들이 끊이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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