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2.07.04 17:43 수정 : 2012.07.04 17:43

[매거진 esc] 디자인 큐레이팅
멋 좀 부릴 줄 아는 남자들의 이야기
➋ 양복점의 환골탈태…맞춤 슈트에 주목하기 시작한 젊은이들

40년이 넘도록 손바느질을 한 마스터 테일러의 가운뎃손가락은 골무를 빼고서도 그 파인 자국을 쉽게 부풀리지 못했다. 일종의 훈장이었다. 중년 남자들의 무표정한 어깨와 허리는 그의 손을 거쳐 멋스러운 라인으로 재탄생했고, 이윽고 남자들은 ‘신사’가 되었다. 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세기테일러의 윤인중 원장. 그의 바느질 앞에서는 대통령도, 아직 소년의 얼굴이 남아 있는 스무살 청년도 모두 평등했다. 맞춤 슈트는 과장된 스타일이 아닌, 남자로서의 태도를 만들어주는 가장 명료한 통로였기 때문이다.

김선미 제공
1970년부터 40여년간 비스포크 방식의 슈트를 제작해온 세기테일러는 한국의 새빌로(영국의 맞춤 슈트 전문점 거리)라고 불리는 서울 소공동에서 성장했다.

‘Been Spoken For’라는 말에서 유래한 비스포크(Bespoke)는 치수재기부터 패턴의 제작, 가봉, 완성에 이르기까지 테일러가 모두 관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존에 있는 패턴의 사이즈를 늘리고 줄이는 수미수라 방식(반맞춤)에 비해 비스포크 방식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패턴이라는 점에서 ‘나만의 맞춤 슈트의 완결판’이라 할 수 있다. 1960년대 양복점의 올드함을 상상한다면 큰 오산. 세기테일러 고객 중 60~70%는 20, 30대 젊은 층이다. 결혼을 앞둔 사람들 외에 인생의 첫 슈트를 맞추러 오는 사회 초년생이 꽤 많다고 하니 바야흐로 ‘멋의 귀환’이 시작된 것이다. 맞춤 슈트를 선택하는 사람들은 ‘내 몸을 따라 흐르는 자연스러운 슈트 라인’을 가장 큰 장점으로 꼽는다. 또한 원단과 바느질 방식뿐만 아니라 단추, 칼라, 소매 등 부자재를 내가 원하는 대로 제작할 수 있다는 점도 맞춤 슈트의 매력 중 하나.

처음 맞춤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이 때문에 평범한 패턴의 원단보다는 체크무늬를 선호한다고 한다. 체크무늬는 비스포크의 고급 단계로 패턴의 균형을 맞추는 작업이 까다로워 공정 시간도, 원단 양도 두 배 이상 들어간다. 무조건 맞춤이라고 특별한 원단을 고르는 것보다 나에게 잘 맞는 스타일의 원단을 고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문가는 조언한다. 또한 안감과 바깥 옷감 사이에 들어가는 ‘심지’는 옷의 맵시를 결정하는 중요한 소재임을 강조하는데 심지의 두께, 재질, 재봉 방식에 따라 옷의 균형은 천차만별이 된다고.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거의 사라졌던 테일러숍은 2008년 이후 하나둘 늘기 시작하더니 최근 클래식 패션의 유행과 함께 다시금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저렴한 동네 맞춤 매장부터 대기업의 자본을 바탕으로 한 매장, 외국 유수 브랜드의 맞춤 슈트 서비스까지 그 폭도 다양해졌다. 그 속에서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자리를 지켜온 마스터 테일러는, 여전히 손에서 바늘을 놓지 않은 채 이렇게 말한다. “슈트를 입으면 말도 가려서 하게 되고 걸음걸이도 점잖아지잖아. 한 달이 넘게 정성을 들여서 맞춘 옷을 입고 어떻게 아무렇게나 행동할 수 있겠어. 맞춤 슈트는 남자에게 하나의 태도를 만들어주는 법이야.”

김선미 디자인 칼럼니스트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디자인 큐레이팅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