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8.01 17:50
수정 : 2012.08.01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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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피네스트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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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디자인 큐레이팅
멋 좀 부릴 줄 아는 남자들의 이야기
④ 샌프란시스코 마켓 한태민 대표가 권하는 남성복 학습법
그는 전교에서 옷을 가장 세게(!) 입는 학생이었다. 이후 경제학과에 입학하고 한달 아르바이트를 해서 마음에 드는 바지를 사 입었다. 그 당시 30만원이었으니 물가상승률을 고려한다면 지금 돈으로 얼추 100만원은 넘는 바지였다. 미군 부대 앞, 부츠를 맞춰주는 곳에서 신발을 맞췄고 취향을 최대한 반영하기 위해 야구 점퍼까지 직접 디자인을 해 입었다. 결국,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까지 갔다 오고 나서야 그렇게 좋아하던 패션을 공부하기 위해 이탈리아의 폴리모다로 향했다.
그렇게 패션에 열정적이었던 한 청년은 귀국 후 샌프란시스코 마켓이라는 패션 편집매장을 성공적으로 안착시키더니 지난 4월 ‘라 피네스트라’라는 패턴 오더 방식의 남성복 매장을 열기에 이른다. 라 피네스트라는 이탈리아어로 ‘창문’(The Window)이라는 뜻으로 스타일과 국적에 연연하지 않고 고객의 취향을 담아보겠다는 한태민 대표의 의지가 담겨 있는 가게다. ‘라르디니’, ‘사르토리아 파르테노페아’ 등의 이탈리아 슈트의 패턴 오더를 진행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는 드물었던 일본 현지의 오더메이드(주문생산) 데님도 함께 선보이고 있다. 이곳은 큰 방향성이 같은 ‘취향’을 테두리 삼아 일종의 플랫폼 구실을 하는 셈인데 고를 수 있는 선택의 폭을 다양화하고 있다는 점, 또한 검증된 브랜드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실수의 확률이 낮아진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남성복은 여성복과는 좀 달라요. 기본적으로 공부가 필요합니다. 일본 같은 경우는 아버지나 선배가 옷을 입는 방식, 태도에 대한 부분을 가르쳐주는 문화가 있어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버지가 옷을 가르쳐주지 않잖아요. 스스로 공부를 해야 합니다.”
매장을 찾는 손님들을 통해 남성들의 취향이 조금씩 진화하고 있음을 체감한다는 한태민 대표는 취향에도 순서와 완급이 있음을 강조한다. 우선 자신에게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아는 것이 첫번째라고. 클래식 마니아들은 스타일을 위해서는 가장 먼저 구두부터 바꾸라고 말하고, 한태민 대표는 바지를 선택하는 것부터가 변화의 시작이라고 조언한다. 한정된 시간, 재화, 노력 안에서 선택해야 하는데 결국 여기서의 핵심은 자기 카테고리 아래서 범주를 정해야 한다는 것. 자신의 취향에 대한 관심. 자기 몸의 특성 등을 파악하고 있어야 제대로 된 스타일을 구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라 피네스트라에서도 그가 고객들에게 재해석해주는 부분은 크지 않다. 오히려 매장을 찾는 이들의 정서, 취향을 들어보고 여기에 맞는 스타일을 이어주는 것이 더 정확한 그의 역할이다. 무뚝뚝한 표정의 대한민국 남성들이 스스로에게 온전히 집중해 자기만의 스타일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기대해본다. 그리고 그 징후들은 라 피네스트라에서, 누군가의 옷장에서, 그리고 살랑이는 남자의 마음속에서 이미 시작된 듯하다.
김선미 디자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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