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2.13 18:59
수정 : 2013.02.13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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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front.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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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디자인 큐레이팅
“2023년 2월14일, 집 앞에 있는 잉크숍에 간다. 요즘은 마트에서 식료품, 생활용품을 구입하는 것보다 여기에 더 자주 오는 것 같다. 이 잉크만 넣어주면 원하는 것을 뚝딱 만들어주는 램프의 요정이 우리 집에 있기 때문이다. 그 요정의 실체는 다름 아닌 3차원(3D) 프린터. 초콜릿 잉크를 구매해 남자친구에게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하트 모양 초콜릿을 ‘출력’해줄 생각이다. 아 참, 케이스를 ‘출력’할 티타늄 분말도 구입해야겠다. 초콜릿부터 케이스까지 내 손으로 직접 디자인한 선물을 주는 거야!”
이 가상의 이야기는 조만간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다. 소프트웨어로 3차원 디자인 설계를 한 다음 초콜릿 잉크(파우더)를 굳힌 레이어를 여러 겹 쌓아 3차원으로 실제 초콜릿을 만들 수 있는 프린터가 이미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최근 들어 3차원 프린터의 활약상이 시제품 용도에서 식품, 의학, 건축 분야까지 점차 확대되고 있다. 며칠 전에는 유럽우주국에서 3차원 프린터를 이용해 미래의 달기지 건설을 계획하고 있다는 뉴스를 내보냈을 정도다.
내가 처음 3D 프린터에 관심을 가진 것은 2007년 무렵,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활동하고 있는 디자인 그룹 프런트(front)의 유튜브 영상(사진)을 통해서였다. 영상 속 디자이너들은 허공에 테이블, 의자, 조명 등을 입체화해 그렸고, 센서로 감지된 그 디자인들은 3차원 데이터로 변환되어 고스란히 ‘출력’되었다.
하얀색 잉크로 채워진 프린터 안에서 실제 제품이 만들어져 나오는 그 모습이 얼마나 신기했던지. 굳이 모크업(모형 제작), 금형 등 제품 디자인의 공정을 밟지 않더라도 내가 그린, 내가 디자인한 제품을 손쉽게 만들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묘하게 설레기까지 했다. 그게 6년 전 일이니 지금의 3차원 프린터의 다양한 활약상이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이미 나일론 분말로 3차원 ‘출력’한 최초의 무인비행기가 시험비행에 성공했고 영국 <비비시>(BBC)는 “3차원 프린팅은 20세기의 대량생산 방식을 대체하는 새로운 맞춤형 생산 혁명을 가져올 것”이라고 단언했다. 소비자가 직접 디자인한 입체 제품을 출력해주는 사이트(shapeways.com)도 생겨났다. 플라스틱 모델뿐만 아니라, 철, 금 등 다양한 재질을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인기 있는 곳이다. 예술작품, 패션 액세서리, 장난감, 기계 부품 등 다양한 제품을 주문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이 디자인한 제품을 구매할 수도 있다.
그간의 발전 속도에 비추어 보자면 5년 후, 10년 후 3차원 프린터의 활약상은 상상 밖의 영역까지 침범할 가능성이 높다. 한쪽에서는 ‘산업구조에 혼란을 야기할 것이다’, ‘불법 복제에 활로를 열어줄 것이다’ 등의 부정적인 견해도 내보이지만, 이러한 기술의 변화가 디자인, 더 나아가 개개인의 취향을 반영하는 새로운 계기가 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그때쯤이면 ‘출력’이라는 단어에도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지 않을까. 기술의 발달이 ‘편지를 부치다’라는 문장을 어느새 ‘메일을 전송하다’로 바꾸어놓았듯이.
김선미 디자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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