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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3.13 22:17 수정 : 2013.03.13 22:31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 현대카드 제공

[매거진 esc] 디자인 큐레이팅

공간은 행위를 지배한다. 도서관이라는 공간은 아날로그적 경험을 선사하는 곳이다. 서가에 꽂혀 있는 책들을 훑어나가는 설렘, 손끝에 전해오는 사각거리는 종이의 촉감, 책의 낱장을 넘기며 행간에 숨어 있는 의미를 상상하는 즐거움…. 도서관은 그러니까 파편화된 지식과 정보에서 한발 벗어나 ‘생각할 시간과 계기를 만들어주는’ 그런 공간인 것이다.

2월, 서울 종로구 가회동에 흥미로운 도서관이 문을 열었다. 디자인이라는 태생적 속성을 전면에 드러낸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는 현대카드에서 1년 넘게 기획한 지적 브랜딩 프로젝트 중 하나다. 느리게 축적된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가회동에, 역시나 오랜 시간 축적된 전세계 다양한 디자인 양서들이 모였다.

해 질 무렵 찾아간 디자인 라이브러리는 평일인데도 꽤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적당하게 어슴푸레한 대기 때문일까. 기왓장과 콘크리트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주변 풍경 때문일까. 쉼표 같은 중정을 중심으로 전면 유리창에 비친 라이브러리 내부는 어쩐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1층에는 북카페와 함께 전시전용 공간이 마련되어 있는데 한정판 무크지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비저네어>(Visionaire) 전시가 진행중이었다. 텍스트와 이미지로 구성되는 2차원 매체의 한계를 뛰어넘어 크리에이티브한 아이디어로 실험적 작업을 해온 비저네어는 ‘출판’과 ‘예술’의 결합이 어디까지 진화할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기네스북에 등재된 가장 큰 잡지(비저네어 61권, 200.66×146㎝)를 비롯하여 현재까지 발간된 62권 중 49권이 전시되어 있으며, 직접 만져보고 체험해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1층 전시공간을 지나 라이브러리 내부로 올라가면 비로소 전문 북 큐레이터가 선별한 1만1498권의 디자인 장서들이 펼쳐진다. 라이브러리 프로젝트를 기획한 류수진 과장은 맨 처음 도서 선정 기준을 만들던 때가 가장 중요하고 또 어려웠다고 회상했다. 도서 기준은 국내뿐 아니라 유럽과 미국, 아시아 주요 도서관의 도서 선정 기준 및 2000여개에 달하는 세계적인 디자인 전문 출판사의 출판 목록까지 면밀히 분석한 뒤 확립되었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글로벌 북 큐레이터들이 참여했고, 뉴욕현대미술관(MoMA) 수석 큐레이터인 파올라 안토넬리의 조언을 통해 디자인적 확장을 꾀했다. 이렇게 탄생한 큐레이팅의 7가지 원칙은 영감을 주거나(Inspiring), 문제의 답을 제시할 것(Useful), 다양한 범위를 포괄하고(Wide-ranging), 해당 분야에서 영향력을 지니고 있어야 하며(Influential), 그 한 권으로 충실한 콘텐츠를 담을 것(Through), 더불어 심미적인 가치를 지닌(Aesthetic), 시대를 초월한(Timeless) 책일 것.

특히 전체 장서의 70%는 국내에 아직 들어오지 않은 서적으로 구성되었는데 그중 라이프 매거진 전 컬렉션과 건축 전문지 <도무스>의 전 컬렉션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실제 전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는 도서관이 세계에서 두 곳밖에 없다고 하니 여기에서 얻을 수 있는 영감의 기회도 흥미로울 듯하다. 분당에 위치한 네이버 도서관이 조금 더 범용적인 디자인 서적을 볼 수 있는 곳이라면 이곳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는 조금 더 유려하고 희귀본이어서 더욱 흥미로운 디자인 서적들을 만나볼 수 있는 곳이다. ‘디자인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입장 가능’이 아닌 현대카드 회원과 동반 1인 입장이라는 점은 아쉬운 부분, 밤 10시(화~토)까지 문을 연다는 점은 직장인들에게는 환영할 만한 부분이다.

디자인 자료가 필요할 때뿐만 아니라, 영감과 몰입의 공간이 필요하다면 이곳을 찾아보자. 이왕이면 도시의 어둠에 묻힐 수 있는 저녁 8시 이후 이 라이브러리의 숨은 명당, 3층 다락방(기오헌)에 자리를 잡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김선미 디자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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