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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3.27 18:09 수정 : 2013.04.10 18:33

[매거진 esc] 디자인 큐레이팅

중학교 시절이었나. 이상의 시 ‘오감도’를 읽고 느꼈던 그 스산하고 낯선 기분을 잊지 못한다. 단편소설 ‘날개’에서는 그의 자조적인 모놀로그에 묘한 연민을 느꼈고, 폐결핵 등의 지병으로 26년8개월을 살고 요절한 그의 쓸쓸한 이력도 나에게는 ‘창작하는 이의 극적인 삶’에 대한 표지로 다가왔다. 초현실주의, 불온한 기운, 무기력하되 멈출 수 없는 철학적 사유, 그리고 악착같이 그것을 기록하는 그의 떨리는 손. 감성 충만한 사춘기 시절의 나에게 이상은 그런 습기 찬 존재였던 것이다. 그런 그가 커피 마니아에 미쓰코시백화점(현재 신세계백화점 본점 구관)을 들락날락하던 당대의 모던보이였음을 알았을 때는 왠지 모를 배신감이 느껴졌을 정도다. 모던보이이자 치열한 창작자였던 이상은 급기야 연인 금홍과 함께 다방을 개업하기에 이른다. 종로에 자리잡은 제비다방은 일제강점기 몸과 마음이 피폐했던 박태원·김기림 등 당대의 문인이자 모던보이들의 은신처였다.

“이 집에는 화가, 신문기자 그리고 동경 대판(東京 大阪)으로 유학하고 도라와서 할 일 업서 양다(洋茶)나 마시며 소일하는 유한청년(有閑靑年)들이 만히 다닌다. 봄은 안 와도 언제나 봄긔분 잇서야 할 제비. 여러 끽다점(喫茶店) 중에 가장 이 땅 정조(情調)를 잘 나타낸 제비란 일홈이 나의 마음을 몹시 끄은다.”

1934년 5월1일 문화잡지 <삼천리>(三千里)에 실린 끽다점평판기(喫茶店評判記)라는 제목의 글을 보면 제비다방이 모던보이들의 아지트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제비다방은 경영난 등을 이유로 2년도 안 되어 문을 닫게 된다. 그 후에도 이상은 ‘식스나인’, ‘쓰루’, ‘무기’ 등의 다방을 개업하며 사유와 유희의 구심점이 되는 ‘모던보이들의 아지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김선미 제공
그런 이상의 미련이 제비다방의 재개업을 이루어낸 것일까. 종로구 통인동에 위치한 이상이 살았던 집터의 일부를 개조한 이상의 집이 ‘제비다방’이라는 이름으로 한시 운영되고 있다. 문학과 영화, 미술, 건축 등 문화예술을 중심으로 한 테마들이 기획되고 있으며, 다방 내부는 화려하고 과잉된 정서 대신 담백한 사유의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제비다방은 ‘이상의 집’ 첫 프로젝트로 이상의 기일인 오는 4월17일까지 한시적으로 영업한다. 그간 일일마담을 필두로 한 문화예술의 장을 마련해왔는데 3월29일에는 광고사진과 예술사진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사진작가 김용호를 일일마담으로, 이 시대 모던걸·모던보이를 위한 ‘샴팡구락부’(Champagne Club·사진)가 열린다. 1930년대 ‘제비다방’을 직간접으로 경험해보는 이번 행사는 당시 모던걸·모던보이의 패션을 드레스코드로 한다. 배경음악으로는 1930년대의 노래와 아코디언 선율이 흐를 예정. 당시의 모던걸 최승희를 연상시키는 무희도 등장하며 이상의 소설 속 경성의 모습을 재해석한 김용호의 사진 전시도 진행된다. 드레스코드를 맞춰 오면 샴페인 한 잔을 무료로 마실 수 있지만, 복장에 상관없이 누구나 참석 가능하다.

3월29일, 모던걸·모던보이들을 만나러 제비다방을 다시 찾아야겠다. 혹시 또 아나. 친구의 파이프 담배를 입에 물고는 디자이너 안상수가 만든 제비다방 간판을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이상을 만나게 될는지.

김선미 디자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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