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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4.24 18:19 수정 : 2013.04.24 18:19

김선미 제공

[매거진 esc] 디자인 큐레이팅

얼마 전 내 취향에 딱 맞는 귀걸이를 구입했다. 한 리사이클링 디자이너가 제작한 이 제품(사진)은 고장 난 시계 부품으로 만든, 양쪽이 다른 나름 한정판 제품이었다. 복잡한 시계의 부속품을 일일이 분해해 원하는 조각을 얻은 그 정성도 마음에 들었고 쓸모없는 것에 다시금 기회를 준 맥락에도 마음이 갔다. 무엇보다 시간의 중요성을 느낀 최근의 내 심리를 상징하기에도 제격이었다.

요즘 하루에도 몇 번씩 ‘취향’에 대해 생각한다. ‘크리에이터들의 취향’에 대한 단행본 작업이 막바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패션디자이너부터 포토그래퍼, 그래픽디자이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자기만의 취향을 만들어가고 있는 사람들을 인터뷰해 우리 시대 크리에이터들의 취향을 조명해볼 목적이었다. 사소하게는 물건을 선택하는 미적 취향에서부터 창의적 작업을 해나가는 디자인 방법론으로서의 취향, 더불어 타인과 접점을 만들며 소통하는 관계의 취향까지 책의 범주는 확장되어갔다. 취향이라는 단어는 그리 만만한 화두는 아니었다. 실제로 ‘가지고 있는 물건 중 당신의 취향을 가장 잘 반영한 물건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1초 만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자신의 취향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기도 하거니와, 설령 자신의 취향에 대해 명확히 알고 있더라도 물건을 선택할 때마다 매번 취향을 1순위로 놓지는 않기 때문이다. 개인의 기호가 점점 더 중요해짐에 따라 ‘취향’이라는 말이 곳곳에서 쓰이고 있지만, 막상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취향’에 대해 물으면 대부분 추상적인 이야기로 답하기 일쑤다. 하지만 ‘취향’은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화두다. 개인의 취향은 다양성의 기반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교육, 경험의 누적으로 생기는 ‘취향’은 확실히 개인차가 있다. 하지만 주위를 살펴보면 ‘획일화된 취향 안에서 안전함을 느끼는’ 사회적 분위기가 종종 발견된다. 스키니진이 휩쓸고 간 지금, 나팔바지를 골라 입기에는 확실히 용기가 따른다. 자영업자의 아이템 1순위였던 조개구이집은 한동안 도시를 뒤덮다가 순식간에 종적을 감췄다. 때때로 ‘취향’은 기업이나 미디어에 의해 조작되기도 한다. 조작된 취향은 소비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획일화된 취향은 다양한 가능성의 출현을 사전에 봉쇄하는 대신 대량생산을 유지시켜준다. 프랜차이즈 커피숍은 핫 플레이스의 가장 목 좋은 곳을 선점하며 날마다 매출을 경신하지만 희귀한 책들과 멋진 아티스트의 작품을 향유할 수 있는 우리 동네 커피숍은 오늘도 적자다. 공급은 수요를 따른다. 내가 즐기는 소박하지만 가치 있는 곳들이 생존(!)하려면 각각의 취향을 지닌 사람들이 지속 가능한 구조를 함께 만들어줘야 하는 것이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강조했듯이 개인의 취향은 스스로를 다른 사람들과 구분하는 명확한 기제로 작동한다. 그리고 이는 다양성을 가능케 한다. 디자인을 비롯해 창의적인 생각이 수반되는 여러 장르에서 누누이 강조되는 ‘다양성’의 기반은 개개인이 가지게 되는 주도적인 취향의 생성과 유지에 그 맥을 같이하고 있음을 다시금 느끼는 요즘이다.

김선미 디자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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