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5.08 18:34
수정 : 2013.05.08 18:34
|
김선미 제공
|
[매거진 esc] 디자인 큐레이팅
‘재미’라는 요소는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한층 더 가깝게 만들어준다. 재미있게 쓰인 글은 그 안에 담긴 정보와 지식을 나도 모르는 사이 내 것으로 만들어주고, 머릿속을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수학 공식도 유머지존 수학 선생님의 흥미로운 교육 방식을 거치면 어느새 강력한 내러티브를 가지게 된다. 어렵고 딱딱하고, 계몽적이고, 권위적인 이야기 방식은 이제 그 어떤 곳에서도 통하지 않게 되었다. 하다못해 지루함을 암묵적으로 인정받아왔던(!) 교장 선생님의 훈화도 이제는 재미를 염두에 두어야 할 시대가 된 것이다.
유수 기관들이 주최했던 심포지엄, 각종 세미나, 포럼 등을 떠올려보자. 처음에는 경청하며 고개도 끄덕거리고, 중간중간 유의미한 단어들을 포착해 열심히 기록도 하지만 30분도 채 되지 않아 머리로 50인조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며 렘수면을 취했던 그날들을. 보는 내내 입꼬리가 단 1㎝도 올라가지 않는, 웃음기라고는 전무한 작가주의 영화는 항상 왜 그리 러닝타임이 긴지, 이럴 때마다 우리는 정신과 육체가 분리된, 그야말로 멘붕의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재미있는 것들만 보고 즐겨도 모자란 이 짧은 인생에 우리의 삶은 너무 진지하고 현학적인 것들로 가득하다.
여기서 잠깐, 디자인의 영역으로 이야기의 방향을 돌려보자. 한동안 범국가적 담론의 주인공이었던 디자인은 민·관 주도하에 수많은 소통의 기회를 만들어왔다. 의도야 어찌 되었든 이러한 담론의 장들이 꽤 의미있는 결과를 맺어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가끔은 행정가의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정작 주인공의 이야기가 종적을 감추기도 했고, 또한 학문적 자격지심(디자인에는 아직 박사학위가 없다)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일부 학자들은 디자인적인 방식으로 다루어져야 할 ‘디자인’을 타 학문의 틀거리에 억지로 끼운 채 언니 옷을 물려 입은 어린아이처럼 어색한 결과를 도출하기도 했다. 디자인의 인식이나 역할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 상황에서 조금 더 흥미로운 ‘디자인 소통 방식’에 대한 시도와 개발은 여전히 아쉬운 것이 사실이다.
그 아쉬움에 대한 해답이 될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조만간 ‘디자인 멀티플렉스’(사진)라는 흥미로운 실험이 진행될 예정이다. 원스톱 엔터테인먼트의 태동이었던 ‘멀티플렉스’에 디자인이 은근슬쩍 한 다리를 걸친 것이 이채롭다. 오는 16일부터 18일까지 3일간 홍대 근처 땡스북스 2층 더 갤러리에서 진행되는 디자인 멀티플렉스는 디자인에 대한 소통을 즐겁게 실현하고자 하는 야무진 포부를 스스럼없이 밝힌다. 필자를 포함해 17명의 디자이너와 기획자, 예술가들이 13개의 화두를 가지고 디자인 멀티플렉스를 진행한다. 창의력을 샘솟게 하는 댄스부터 타이포그래피 워크숍, 디자인 저작권, 1930년대 문화잡지에 대한 르포르타주, 유니코드 내 문장부호 및 약물 표준화 기초연구과정 소개 등 주제도 그야말로 제각각. 디자인과 또다른 방식으로 소통하고 싶다면 팝콘과 콜라를 사 들고 재미있는 영화제에 온 듯 디자인 멀티플렉스를 즐겨보길 권한다. 디자인은 사실, 그렇게 흥미로운 일상이어야 했다. <끝>
김선미 디자인 칼럼니스트
광고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