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2.29 17:45
수정 : 2012.02.29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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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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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esc] 박종만의 커피로드
20여년 전 가난한 독일 유학생 부부에게 대접받은 커피 한잔
3월이 되면 20여년 전 들렀던 독일 마르부르크가 생각난다. 한국에서 100년 전통의 커피하우스를 만들겠다는 꿈을 그곳에서 다졌으니 나에게는 각별한 곳이기도 하다. 거대도시 프랑크푸르트에서 북쪽으로 한 시간 정도 기차로 달려 인구 10만이 채 안 되는 아름다운 대학도시 마르부르크를 찾았다.
일교차가 심하고 찌푸린 날이 많은 독일의 날씨와 달리 그날 마르부르크는 화창한 봄의 얼굴로 나를 맞아주었다. 학생회관 멘자(학생식당)에서 동양인 몇 명에게 말을 걸어 한국 유학생을 수소문했다. 30여분 헤맨 끝에 내게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커피 맛을 안겨준 유학생 ㅂ을 만났다. 크지 않은 체구에 안경 너머 선량한 눈을 가진 ㅂ은 나를 친형을 만난 듯 반갑게 대해주었다. ㅂ은 법학을 전공한 대학원생으로 2년 전 그곳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새신랑이었다. 유학생 부부가 그러하듯 이 부부도 빠듯한 생활에, 참아내기 힘든 이방인의 서러움까지 짊어진, 외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ㅂ은 고목들이 빼곡한 넓은 캠퍼스 구석구석을 안내해주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완벽한 유리온실 식물원이었다. 우리나라 노지에서 커피 재배를 꿈꾸던 당시 나에게 그 식물원은 경배의 대상이었다. 훗날 내가 커피 재배 연구를 하는 데 많은 영감을 준 값진 경험이었다.
늦은 오후 그의 신혼집에 도착했다. 음악을 공부하는 새댁은 저녁상을 준비했다. 오랜만에 보는 된장찌개에다 좀 허옇긴 해도 김치라는 이름 외엔 달리 붙일 단어가 없는 배추무침까지, 평소에 보았다면 참으로 소박한 저녁상이었겠으나 긴 여행 중에 만난 한국 음식이니 어찌 호사라 하지 않겠는가?
잠시 후 부엌에서 커피 그라인더의 기계음이 들렸다. 이내 커피가 나왔다. 단출한 살림을 증명이라도 하듯 잔 하나는 이가 빠진, 그리고 나머지 두 개의 잔은 모양이 서로 다른 커피잔이었다. 나는 가슴이 저며 왔다. 볼품없는 잔에 담긴 커피가 코끝으로 옮겨지고 다시 내 입안을 가득 채운 순간 그 커피는 오랫동안 내가 즐겼던 여느 값비싼 커피들을 그저 상념 속에 모두 묻게 만들었다. 쓴 듯 신 듯 한 커피 맛은 마치 춤추듯 입속에서 온몸으로 퍼져나가 나의 무딘 감각을 일깨웠다. 많은 이들이 커피 향과 맛을 도저히 알아먹기 힘든 묘한 단어들로 잘도 구분을 하지만 나는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낼 적당한 단어들을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다.
그 커피 한잔이 왜 그리 감동적이었는지, 나는 왜 그 자리에서 왈칵 눈물을 쏟아내고 말았는지,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날 그 커피의 둔탁하고 투박한 여운은 기차로 돌아가려 했던 나의 계획을 수포로 돌아가게 했다. 다음날 아침, 고마움을 표하고자 내민 작은 봉투를 한사코 마다한 ㅂ은 오히려 내게 작은 커피 깡통(사진)을 선물해주었다. 나는 고맙다는 말밖에는 줄 것이 없었다. 귀국하면 진심 어린 편지와 성의 있는 선물을 꼭 보내리라. 오랫동안 좋은 친구로 관계를 맺어나가리라는 나의 비장한 다짐은 단 한 차례 짧은 안부편지를 보낸 것으로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맘속으로만 간직하고 있다.
부부가 선물해준 낡은 커피 깡통을 우리 박물관 전시실 한쪽에 두고 그날의 커피 한잔을 추억하고 있다.
박종만 왈츠와 닥터만 커피박물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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