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5.09 17:34
수정 : 2012.05.09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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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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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esc] 박종만의 커피로드
에티오피아 랭보하우스에서 마신 하라르 커피의 잊을 수 없는 향기
한낮에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를 떠나 다음날 새벽 3시가 되어서야 해발 1800m 고원에 위치한 하라르에 도착했다. 투명하게 맑은 밤하늘에 불꽃놀이를 하듯 별이 쏟아졌다. 시간이 갈수록 몸 상태는 좋지 않아 온몸이 무거웠다. 지마에서부터 아팠던 두 눈은 탐험 내내 나를 괴롭혔고, 믿기지 않게도 열대의 아프리카에서 나는 추위에 벌벌 떨고 있었다. 참으로 멀고도 긴 여정이다. 어찌 여기까지 왔는지, 고물 마이크로버스 한대를 얻어 타고 사막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무작정 달려왔다는 것 외에는 다른 기억이 나지 않는다.
랭보하우스를 찾아 곧게 뻗은 구시가지 중심지를 걸었다. 이른 아침부터 해가 따갑게 내리쬐었다. 드센 흙먼지에 숨을 몰아쉬어야 했다. 오랜 가뭄 탓에 물이 귀해 식수 차 앞에는 아이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다. 세상 근심 없는 듯 아이들의 표정은 밝기만 하다. 동네 꼬마들이 낯선 이방인의 뒤를 따른다. 아이들 무리 중에 키 크고 눈치 빠르게 생긴 꼬마 녀석이 불쑥 가이드를 자청하고 나선다. 어디서 배웠는지 능숙하게 영어, 불어를 해댄다. 어린 나이에도 자신만의 하라르 커피 예찬론을 술술 풀어놓는다.
“하라르 커피는 축복받았죠. 신이 축복을 내린 것인데 커피를 볶을 때 다른 커피와는 달리 풍부한 윤기가 흐르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신이 축복 내린 땅, 풍부한 미네랄이 넘치는 하라르 커피 향은 몸속의 구석구석을 파고들죠.”
양팔을 펼치면 쉽게 손에 닿을, 좁은 흙벽 골목길을 지나자 인도식 나무 장식이 눈길을 사로잡는 랭보하우스가 한눈에 들어왔다. 고즈넉한 느낌이다. 시간이 그때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꼭대기로 올라가자 골목길에서는 상상도 못한 풍경이 펼쳐진다. 사방이 창으로 뚫려 시야가 탁 트인다. 멀리 무수히 솟아 있는 이탈리안 무슬림의 코발트빛 첨탑이 인상적이다. 커피나무를 뒤로하고 멋진 포즈를 취하고 있는 랭보의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어린 나이에, 그것도 불과 5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주옥같은 시를 남긴 랭보는 아덴에서 무역으로 커피와 첫 인연을 맺은 후 이곳 하라르에서 본격적인 커피 무역을 하게 된다.
당시의 유럽, 특히 프랑스는 서부 아프리카 식민지의 로버스타(커피 원두의 한 종류)를 대신해 질 좋은 아라비카 커피를 아라비아로부터 전량 수입하던 때였다. 1869년 개통된 수에즈 운하 덕에 모카 커피 수출량의 절반가량을 프랑스로 수출했으니 아덴에서부터 하라르까지 랭보는 커피 속에 파묻혀 살던 때였다.
37살의 짧은 생을 마감한 랭보를 떠올리며 하라르 커피 한잔을 마셨다. 낙타 등에 실려 사막을 지나 홍해를 건넜을 랭보의 하라르 커피 사랑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정황들을 살펴보면 그에게 커피는 그저 삶의 수단은 아니었을까? 아니면 절절히 사랑했던 것일까? 그 속내를 가늠할 수는 없었으나 랭보가 자신의 커피 농장을 갖기도 했을 만큼 하라르 커피는 그에게 충분한 매력을 선사했음을 알 수 있다. 아랍인들은 하라르 커피를 같은 에티오피아에서 나는 시다모나 이르가체페보다 더 좋아한다. 아랍 특유의 향신료 향이 가득한 때문이다. 하라르는 아프리카 속의 아랍이요 아라비아의 한쪽 끝이다. 랭보하우스를 뒤로한 채 하라르 커피나무를 찾아 지친 발걸음을 옮긴다.
박종만 왈츠와 닥터만 커피박물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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