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2.06.06 17:19 수정 : 2012.06.06 17:19

박종만 제공

[매거진 esc] 박종만의 커피로드
동독 시민혁명의 성지 라이프치히 성니콜라이 교회에서 허기를 달래준 커피 한잔

바흐의 ‘커피 칸타타’로 불린 ‘칸타타 BWV 211’이 초연되었던 치머만 커피하우스를 찾아 나섰으나 치머만은 더는 존재하지 않았다. 치머만이 있던 카타리넨슈트라세 14번지는 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의 폭격으로 쑥밭이 된 라이프치히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건물에 속하지 않았다.

답답함을 누르고 근처에 있는 성니콜라이 교회(왼쪽 사진)를 찾았다. 라이프치히에 가까워질 무렵, 밤기차에서 맞은편에 앉았던 짧은 빨강머리 아가씨는 여러번 성니콜라이 교회를 꼭 가보라 권했다. 1989년 9월4일, 월요 평화기도회를 마친 교인 700여명이 교회 밖 광장으로 나선 것이 기화가 되어 장벽을 무너뜨린 동독 시민혁명의 성지가 바로 이 성니콜라이 교회다.

고딕 양식이면서도 독특한 구조를 지닌 교회 안을 살피다 뜻밖에도 어디선가 은은한 커피향이 흘러나왔다. 그 향을 따라 교회 안 깊숙한 구석에 있는 친교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낯선 이방인의 갑작스런 방문에도 놀라는 기색 없이 오히려 너그러운 미소를 보낸다. 12세기에 처음 건축되어 오늘에 이른 작은 아치형 창문으로 햇살이 들어와 방 안을 따뜻하게 만들고 있다.

커피는 누군가 미리 끓여둔 것을 교인들이 직접 따라 마신다. 책장 넘기는 소리와 사람들의 소곤거림이 기분 좋게 만든다. 아침부터 돌아다닌 탓에 허기진데다 커피가 간절했다. 누군가 내게 다가와 커피 한잔을 내민다.

간절히 원할 때 이루어진 일들은 기쁨이 배가 된다. 미리 끓여두어 약간 식었는데도 커피 맛은 일품이었다. 적당함이라고 할까 절제라고나 할까, 화려한 에스프레소 기계를 통해 뽑아진 에스프레소에 비길 맛이 아니었다. 카페는 더이상 자유사상가들, 권력을 맹신하는 정치가들, 사회적 명망가들이 드나드는 곳이 아니었다. 엘리트가 되기 위해서도 아니요 특권을 누리기 위함도 아닌 그저 각자의 사사로운 일상을 카페에서 보내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지는 않아도 꾸준히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나는 송아지 저금통에 1유로라도 아끼던 평소 습관과는 달리 넉넉히 넣었다.

내게 커피를 내민 카페의 책임자이자 목회수업을 받고 있는 제이(J·오른쪽)에게 염치없는 부탁을 함께 했다. 역사적인 의미가 깊은 이곳의 커피 잔을 꼭 우리 박물관에 전시하고 싶다고 진지하게 말했다.

“이 커피 잔이 우리 교회 카페에서보다 더 유용하게 쓰일 수 있도록 드리겠습니다.”

나는 그의 이 짧은 말 한마디에 금세 가슴이 뭉클해지고 코끝이 찡해졌다. 교회에서 쓰는 커피 잔이 사치스러울 리 없어 값비싼 것도 아닐 테지만 해마다 나서는 커피 탐험에서 참으로 의미 있는 순간을 맞았다. 지금 우리 박물관 전시실 한쪽 면에는 성니콜라이 교회에서 받은 이 커피 잔과 지난해 다마스쿠스의 우마이야 모스크에서 받은 커피 잔이 나란히 마주하고 있다. 마치 이슬람을 통해 기독교 세계에 전해진 커피 역사를 증명이나 하려는 듯하다.

박종만 왈츠와 닥터만 커피박물관 관장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박종만의 커피로드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