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6.27 17:43
수정 : 2012.06.27 17:43
[매거진 esc] 박종만의 커피로드
킬리만자로에 올라 마셨던 맵고 뜨거웠던 전통 커피의 맛, 잊을 수 없는 여주인의 얼굴
무더위에 빠듯한 일정, 불편한 숙소, 입에 맞지 않는 아프리카 음식들로 대원들은 힘든 기색이다. 탄자니아 모시(Moshi)로 향한 늦은 출발로 불편함을 감추지 못한 내 표정은 아침 내내 내린 비로 인해 대원들 모두를 더 힘들게 만들고 있다. 빗속의 킬리만자로를 고물 지프로 오르는 일은 그리 수월치 않다. 길은 어느새 비로 인해 샛강으로 변해 있다.
킬리만자로를 지척에 두고 있지만 비로 인해 위용만을 느낄 수 있을 뿐 그 모습은 볼 수가 없다. 킬리만자로는 많은 이들에게 생이 다하기 전 언젠가는 반드시 가 보아야 할 아름답지만 고독한 자신만의 이상향으로 각인되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상상 속의 아름다움에 편승해 일본의 커피업계에서는 언제부턴가 탄자니아 커피를 킬리만자로 커피로 칭하고 있고 탄자니아 사람들도 그렇게 불리는 것이 싫지 않은 모양이다.
잠시 쉴 요량으로 길거리 커피점 앞에 차를 세운다. 말이 커피점이지 나무로 얼기설기 엮어 만든 가정집 한 귀퉁이 약 33㎡(10평) 남짓 공터에 장작불과 냄비, 설거지용 물통 네 개가 전부인, 의자도 없는 그야말로 노천 커피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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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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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비에는 얇게 채 썬 생강이 끓고 있다. 그 위로 곱게 갈린 커피 원두 가루를 듬쑥 집어넣는다. 정제되지 않은 굵은 설탕도 한 움큼 손에 담아 집어넣는다. 한참을 기다린 후 중국산이라는 표기가 선명한 오렌지빛 플라스틱 거름망에 거른다. 커피찌꺼기 조금과 생강이 걸러진다. 생강커피(Ginger Coffee)이다. 이곳 탄자니아 북부지역에 오래전부터 대를 이어 전해 내려오는 전통 커피로, 기호품으로서의 음료가 아니라 추위를 잊고 몸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약리효과를 내는 건강음료로서의 커피인 것이다.
쌉쌀함과 쓴맛 그리고 단맛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연거푸 두 잔을 청해 마신다. 입맛에 따라 커피에 우유나 꿀 혹은 술 같은 것을 첨가하는 것은 익히 보아왔지만 처음 물을 끓일 때부터 커피가 아닌 다른 재료를 넣는 것은 처음 보았다. 큰 기대 없이 얼떨결에 접한 생강커피이지만 노천 커피점의 분위기와 맛 그리고 연신 수줍어 어쩔 줄 몰라 하던 커피점 여주인의 순박한 모습과 함께 오랫동안 기억 속에 남아 있을 특별한 커피다.
비는 그칠 줄 모른다. 고작 먼발치에서 잠시 본 킬리만자로를 보고 뭐라고 말하는 건 온당치 않은 일이겠지만 적어도 지금 본 킬리만자로는 그 어떤 너그러움이 스며 있는 것이 분명하다. 모시로 가는 길가의 경사면 커피나무들 중에서도 잘 가꾸어진 나무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대신 힘겨워하는 농민들의 지친 표정에서도 반짝이는 미소는 어디에서나 보석처럼 빛난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그 맑은 미소를 생각할 때면 함께 킬리만자로의 생강커피가 떠오르게 될 것이다.
박종만 왈츠와 닥터만 커피박물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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