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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7.11 17:32 수정 : 2012.07.11 17:32

박종만 제공

[매거진 esc] 박종만의 커피로드

예멘 사나니 커피 산지에서 만난 가난한 커피 농부의 부탁과 미안한 거절

예멘 사나니 커피 산지를 찾아 마투브(Mathoob)로 향했다. 돌산 산중턱으로 건조한 바람이 분다. 커피나무가 눈에 띄기 시작한다. 차에서 내려 흙을 만져보았다. 푸석거린다. 작물을 심으려고 돌밭을 갈아 두었고, 커피나무는 줄지어 뙤약볕을 쪼이고 있다. 나무 사이로 농부의 모습이 보인다. 불쑥 찾아간 일행을 보고 오라 손짓한다. 언제부터 커피 농사를 지었느냐는 질문에 쉼 없이 답한다.

“어릴 때부터 해오던 일이에요. 지금은 새로 땅을 일궈 좀더 많은 나무를 심으려고 해요. 여기는 잘 익은 커피나무들이 있어요. 이쪽은 옛날부터 있던 나무들이고 저쪽은 새로 심을 땅이에요.” 활기찬 표정이다.

나뭇가지를 들추며 그중 잘 익은 가지 한 줄을 꺾어 보여준다. 입에 물고 크게 한 바퀴 돌며 덩실덩실 춤을 춘다. 그의 우스꽝스런 춤사위에 웃음꽃이 피었다. 농부는 집을 향해 큰소리로 두 아들을 불러 커피를 준비시킨 뒤 언덕 위 새로 일군 돌밭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막 심어둔 어린나무들이 힘겹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잘 갈아엎어놓은 흙에 구덩이를 파고는 어린나무 한 그루를 소중히 두 손으로 감싸 구덩이에 묻는다. 무릎을 꿇고 신께 기도드리는 것을 잊지 않는다. 고운 흙을 뿌리 옆에 뿌려준다. 거친 흙을 덮고 엄지발가락과 검지발가락에 나뭇가지를 끼워 꾹꾹 밟아준다. 특이한 방식이다. 주변에 있는 나무 막대기 몇 개와 돌로 벽을 만들고 그 위로 종이상자를 비스듬히 덮어 그늘을 만들어준다. 작은 플라스틱 양동이에 담은 물을 부어주어 이 집안의 소중한 살림밑천인 커피나무 한 그루를 심은 것이다. 그의 허리춤에 찬 전통 칼 잔비야(예멘에서 전통으로 이어지고 있는 남자들의 지위와 가문을 상징하는 단검)와 미소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집 앞마당 나무그늘 아래에 자리가 깔려 있다. 기댈 수 있도록 큼지막한 베개도 놓여 있다. 어디를 가나 비스듬히 기대앉는 모습을 본 것으로 미루어 예멘 고유의 풍습인 듯했다. 작은아들이 커피를 들고 나왔다. 커피잔으로 건배와 러브샷을 연이어 하며 잠시 즐거움에 빠졌다. 커피잔이 다 비어 갈 무렵 농부는 진지한 표정으로 아들녀석을 한국으로 데려가 줄 수 없겠느냐고 부탁한다. 아프리카 짐마에서 만난 아홉 아이를 둔 농부가 내게 했던 똑같은 내용의 간절한 부탁이 떠올랐다. 자식 잘되기를 바라는 부모 마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르지 않다. 부탁을 받을 때면 마음이 앞서지만 앞뒤 생각해보면 늘 쉽지 않다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딱한 심정이다. 커피 묘목 한 주에 200예멘리알. 1달러 정도 하는 커피나무는 두 아들에게 앞으로 30년 동안 사나커피라는 이름표를 달고 큰 기쁨을 전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위안했다. 커피나무를 심는다는 것은 자식들을 위한 아버지의 수고요 기쁨이리라.

박종만 왈츠와 닥터만 커피박물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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