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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7.25 17:16 수정 : 2012.07.25 17:16

[매거진 esc] 박종만의 커피로드

부푼 마음으로 도착한 예멘의 모카항…커피의 역사와 숨결 대신 황량함의 추억만 새기다

12시쯤 도착할 수 있으리란 상상은 애당초 무리였다. 육지가 가깝다는 소식을 알리기라도 하듯 작은 고깃배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한다. 어렴풋이 항구가 보이기 시작한다. 아프리카의 지부티에서 출발해 16시간의 긴 항해 끝에 드디어 예멘의 모카에 도착하고 있다.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은빛 물결 너머로 전설의 모카항이 가까이 다가온다. 가슴속에 그려왔던 모카항의 모습이 두 눈 가득 들어온다.

비로소 모카항에 발을 딛는다. 차창 밖으로 폐허가 된 건물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온다. 사람이 간혹 보이기는 하지만 도저히 사람 사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바닷가에는 먼 곳에서부터 쓸려왔을 지푸라기며 비닐봉지 같은 온갖 잡동사니들이 널브러져 있다. 들개 떼들이 어슬렁거린다. 늑대를 연상시킨다. 한가로이 떠 있는 작은 배들. 뒹구는 주춧돌,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아름다운 옛 건물들의 잔해, 약국, 나귀. 골목이 제법 큰 것으로 보아 옛 영화를 짐작할 수 있을 뿐, 그야말로 전설에 파묻혀 버렸다. 황량하다는 말로 표현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하다.

박종만 제공
크지 않은 동네를 한참 동안 몇 바퀴를 돈 다음에 커피집에 들렀다. 나무간판에 ‘카페 주테, 모카’(Cafe Zoute. Mocha)라 쓰여 있다. 커피 한잔을 청하자 22살의 동네 청년이자 사장인 이가 별사람 다 보겠다는 듯 이리저리 나를 살피고는 고갤 갸우뚱거리며 커피를 만들어 낸다. 언제부터 이 커피점이 생겼느냐는 질문에 모른다고 잘라 말한다. 아쉬운 마음이다. 이 젊은 사장은 낡고 시시콜콜한 역사 따윈 안중에도 없다. 그렇다고 자신의 생업에 열중인 그를 두고 역사의식이 없다는 둥, 어찌 책망할 수 있겠는가!

잘 헹궈지지 않은 유리잔에 인스턴트커피를 두 스푼 넣은 뒤 끓고 있는 두 개의 양은 주전자 중 하나를 골라 뜨거운 차를 붓는다. 이미 딴 깡통 연유를 가득 붓는다. 계핏가루를 듬뿍 뿌리더니 젓지도 않고 건네준다. 멀건 모카커피를 한모금 마신다. 허탈한 마음이다. 근사한 바닷가 커피집 테라스에서 모카항을 바라보며 진하디진한 모카커피를 한잔 마셔보고 싶었던 꿈은 황망히 날아가 버린다. 하지만 커피의 역사와 숨결이 배어 있는 모카항에 유일한 커피집에서 마시는 오리지널 모카커피에게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어둑해질 무렵 폐허가 된 동네를 다시 둘러본다. 뼈대만 앙상한 2층 건물에는 최신식 아르데코의 기하학적 감각이 묻어 있어 과거의 영화가 비치는 듯하지만, 거친 모래와 굵은 돌멩이만 나뒹구는 골목길, 그 위를 지나는 나귀, 오토바이, 덕지덕지 붙은 선거용 포스터, 왜소한 이슬람 첨탑, 그 어디에서도 지난날의 화려함은 없다. 마을 안 종교적 분위기는 이슬람의 정신문화가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자랑스럽게 이어지고 있음을 잘 알려주고 있지만, 모카항이 보여주는 오늘의 모습은 황량함 외에는 달리 표현할 방도가 없다.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는 역사는 지금도 그렇게 반복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모카항을 떠난다. 그리도 긴 시간을, 그리도 먼 길을 산 넘고 바다 건너 찾아온 모카항을 겨우 반나절 둘러보고 떠난다. 모카에서 하룻밤을 지내려던 계획이었으나, 마땅히 잘 만한 숙소를 찾지도 못했거니와 으스스한 분위기가 두렵기도 해 아쉬움을 접어둔 채 발걸음을 재촉한다.

박종만 왈츠와 닥터만 커피박물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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