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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8.08 17:35 수정 : 2012.08.08 17:35

박종만 제공

[매거진 esc] 박종만의 커피로드

모카항으로 향하는 홍해 바다 위에서 겪은 모닝커피의 추억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지부티는 동부 아프리카의 물자들이 집합하는 교역의 요충지다. 항구로 나와 모카항으로 떠나는 배를 수소문했으나 없다 한다. 다른 나라에서 화물을 싣고 지부티에 온 배가 화물을 내려놓고 다행히 모카로 짐을 싣고 떠나게 되면 얻어 탈 수 있다는 얘기다. 그것도 20시간이 걸린단다. 청천벽력과 같은 얘기다. 저 깊은 산 에티오피아 짐마 지역 농부들의 손을 떠난 커피가 굽이굽이 돌아 이곳 지부티에서 잠시 머물다 홍해를 건너 모카로 건너간 여정. 오로지 그 여정을 따라 기다림과 인내의 연속이었던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고 지금 이곳까지 오지 않았는가!

허기와 허탈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다음날 아침, 해가 뜨자마자 숙소를 빠져나와 무작정 항구로 다시 나섰다. 오후 4시에 배가 뜰지도 모르겠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오후 6시쯤, 영화 속 해적선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낡은 목선 두 척이 항구로 들어왔다. 그중 한 척이 모카로 떠날 거라 한다. 밤이 깊어간다. 또다른 기다림의 연속이다. 밤 9시가 되어서도 떠날 기미가 없다. 그사이 부두에는 소떼가 목선에 실리고 있다. 500마리가 넘는 소떼를 옮겨 싣는 일은 자정이 지나서야 끝이 난다. 온종일 항구에서 기다린 끝에 드디어 소떼 가득한 화물선에 오른다. 새벽 1시다.

홍해는 평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넓다. 아프리카 대륙과 아라비아반도 사이에 있는 좁고 긴 바다 홍해. 지도를 펼쳐놓았을 때 금세 손에 닿을 것 같았던 모카항은 가도 가도 끝이 없다. 이슬람 여인들과 한데 섞여 갑판 위에 쓰러져 잠이 든다.

홍해의 태양이 눈부시게 떠오른다. 바닷속 해조류의 영향으로 물빛이 붉게 보인다 해서 홍해라 부른다고 하지만 내 생각으로는 지금의 붉은 물빛 때문이 아닐까 한다.

날이 밝자 아름다운 홍해 위에 떠 있는 소떼, 550마리의 좁고 지저분한 화물칸이 눈에 들어온다. 뱃멀미를 견디지 못하고 자신들이 쏟아낸 배설물로 축축해져 버린 바닥으로 한두 마리씩 쓰러지기 시작한다. 그 큰 눈만 끔뻑거리고 있는 녀석들의 처지가 우리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보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한잔 커피가 간절했다. 목선의 인도인 주방장에게 배낭 속 커피가루를 건네주며 끓여주기를 부탁했다. 그러나 잠시 홍해의 아침풍경에 정신이 팔린 사이 일주일 내내 마실 만큼의 커피를 모두 주전자에 넣고는 우유와 설탕을 마구 섞어 끓여버렸다.

커피 여행지에서 만날 거라고는 한번도 상상하지 못한 커피가 나타났다. 단맛이 마치 싸구려 탈지분유를 뒤집어쓴 것처럼 지나치게 강했다. 허탈했다. 하지만 맛이 더이상 중요하지 않은 순간이 찾아왔다. 맑은 웃음의 인도 선원들과 검은 베일에 싸인 이슬람 여인들이 함께 커피로 하나되는 잊지 못할 모닝커피 추억을 간직하게 되었다.

박종만 왈츠와 닥터만 커피박물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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