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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8.22 17:15 수정 : 2012.08.22 17:15

박종만 제공

[매거진 esc] 박종만의 커피로드

역사와 문화의 산물이 된 베네치아 카페 기행 단상

베네치아(베니스) 가는 기차를 기다리며 로마역에서 에스프레소 한잔을 마셨다. 수도의 역답게 수많은 사람들이 어디론가 오간다. 커피점 앞에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다. 바리스타 넷이 커피를 뽑으며 족히 삼십명은 상대하고 있다. 바에 기대어 에스프레소며 카페라테 한잔씩을 비우고 찬물 한잔으로 입가심을 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제 갈 길을 간다. 커피점 앞으로 여행가방을 든 사람들이 쉴 새 없이 몰려든다. 20세기 초 에스프레소 머신이 만들어지지 않았더라면 유럽, 아니 세계의 커피문화가 오늘처럼 발달할 수가 없었을 것이리라.

산마르코광장 카페 플로리안과 콰드리를 찾아 나섰다. 지도책을 들여다보고 걸었는데도 구경하느라 여러번 길을 잃었다. 한참 걸어 이젠 잘 찾아가고 있겠지 하다 보면 어느새 그 자리에 다시 와 있다.

산마르코 대성당과 가장 가까운 카페 라베나(Lavena)의 테라스를 시작으로 광장 안 카페 네 곳을 커피를 마시며 돌아다녔다. 이십 수년 전 커피 공부를 처음 시작할 때 미친 듯이 일본의 이름난 커피하우스를 돌아다니던 때가 생각났다. 미련스런 일인 줄 잘 알면서도 광장 안 한군데도 빼놓고 싶지 않았다.

카페를 돌며 골몰히 생각에 빠졌다. 과연 카페의 가치를 커피 맛으로 평가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적어도 의미는 있는 일인가? 의욕은 앞섰으나 카페 한곳 한곳을 지날 때마다 부질없음을 깨달았다. 그렇다. 카페에서 커피 맛은 절대적 가치가 될 수 없다. 그 공간이 지니고 있는 내면적 요소, 함축된 분위기,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세월의 흐름, 그런 커피 외적인 요소가 그 카페를 말하고 있었다. 베네치아에서 카페는 커피를 마시는 공간만이 아니었다. 카페는 이미 그 공간이 지니고 있는 역사적 의미 혹은 존재적 가치로 평가되어 하나의 문화 산물이 되어 있었다.

대운하를 가로지르는 베네치아에서 가장 오래된 리알토(Rialto) 다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옛날 예멘의 모카항을 떠나 거친 바닷길을 건너온 커피는 이곳 베네치아에서 머물다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예나 지금이나 커피는 기근을 해소할 주식도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비단이나 금은 같은 사치품도 아니었건만 사람들은 열광했다. 커피는 차라리 전염병과도 같았다. 커피를 한번이라도 맛본 사람들은 이내 커피의 매력에 빠져들고 말았다. 그 정점에 베네치아가 있었다.

어둑어둑 해가 지더니 어느새 보름달이 떠올라 운하에 희미하게 비친다. 큰 배낭 때문에 아프던 어깨는 이제 카메라 끈만 닿아도 통증이 느껴진다. 운하 옆 카페테라스에 털썩 주저앉았다. 약국에서 산 통증완화 연고는 처음에는 약효가 꽤 오래갔는데 이젠 바를 때만 잠시 나은 듯하다가 이내 다시 아픔이 전해져 온다. 문득 혼자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외로움이 밀려왔다. 그리운 얼굴들을 떠올리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끝>

박종만 왈츠와 닥터만 커피박물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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