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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2.02 15:16 수정 : 2012.02.02 15:16

왼쪽부터 남찬우씨(25)·박제현씨(25)

[매거진esc] 길위의 사람들


지난달 12일 오후 2시 서울 남산골 한옥마을. 영하의 추위도 아랑곳없이 떼지어 한옥 구경 다니는 중국인 단체관광객만 눈에 띄는 평일 오후다. 화장실 앞에서 담배를 피우며 어슬렁거리고 있는 한국 청년 둘이 오히려 이채로워 보였다. “이 추운 날씨에 남자 둘이서 웬 한옥마을 구경?”

“그냥 여기저기 둘러보는 거죠. 방금 남산에도 갔다 왔어요.” 강추위 속 평일 한낮, 시린 손 비비며 서울시내 구경에 나선 두 나그네. “얼마 전 여친과 헤어졌”거나 “아직 여친을 못 구한”, 직장도 애인도 없는 지극히 평범한(물론 군필!) 우리나라 청년들이었다. “백수냐고요? 실은 공부하기 싫어서 놀러 나왔어요.” 두 청년은 햇빛 시린 화장실 벽을 바람막이 삼아 서서 담배를 한대씩 더 꺼내 물었다. “노량진 고시원에서 5개월째 공무원시험 준비하고 있어요.”(박제현씨·25·사진 오른쪽) “전 편입시험 준비중이고요.”(남찬우씨·25·왼쪽)

박씨(강원대 관광경영학과 4)는 취업 준비를 위해 졸업을 늦춘 휴학생, 남씨(가천대 신방과 2)는 유리한 취업 여건 마련을 위해 명문대 편입을 노리는 재학생이었다. “취업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공부하는 것도 지긋지긋해서요. 하루 머리 식힐 겸 쉬려고요.”

박씨는 “기분전환 하러 남산 갔더니 연인끼리 ‘커플 자물쇠’ 채워놓은 게 즐비해서 더 쓸쓸해지더라”며 “어디 딴 데 가볼 만한 데 추천해 달라”고 말했다. 한겨울 영하의 날씨에 남자 둘이서 구경 다닐 만한 데가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날은 춥고 쓸쓸한데, 애인도 없고 갈 곳도 마땅찮은 한낮 서울 도심 한복판의 두 청년. 취업·편입시험 준비에 매달리다 모처럼 쉬러 나온 그들은 썰렁한 한옥마을 화장실 앞에 멈춰서 있었다.

“취직도 척척 못하고 아직 부모한테 손 벌리며 산다는 게 부끄럽고 씁쓸해요.”(박씨) “명문대만 알아주잖아요? 갈아타 보려고요.”(남씨) 결국 “추운데 오늘은 술이나 한잔하고, 다시 공부에 매진”하기로 결정한 둘은 “넉넉지 않아도, 부모님 덕에 그나마 공부할 수 있어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말을 남기고 싸락눈 몰아치는 한옥마을을 빠져나갔다.

지난 29일 두 사람에게 전화해 근황을 물었다. 박씨는 “고시원에서 세끼 밥 사먹으며 4월에 있을 시험 준비”에 몰두하고 있었고, 남씨는 “다섯 대학에 편입학 원서를 내고, 일주일 일정으로 홀로 기차여행 중”이었다. “잠은 찜질방에서 잔다”는 남씨는 “혼자 여행하며 ‘왜 사느냐’에 대한 문제부터 다시 생각할 기회를 얻었다”며 “세상이 각박하지만은 않다는 것도 깨닫고 있다”고 전했다. 고민하고 노력하는 두 젊은 여행자에게 좋은 결실이 있기를!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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