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2.29 17:31
수정 : 2012.02.29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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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형섭(74)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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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esc] 길위의 사람들
“귀농 생각하는 퇴직한 분들, 허리 아파 농사 못 짓겠다는 분들, 딴거 없어요. 바로 요 딸기 농사여. 딸기 수경재배.”
지난 24일 전북 익산시 낭산면 낭산리 한 비닐하우스 딸기밭. ‘딸기 수경재배 4년차’라는 진형섭(74·사진)씨가, 아주 제대로 만났다는 듯이, 딸기주스를 거듭 따라주며 말을 이어갔다.
“내가 전북서 딸기 수경재배 1호요. 퇴직하고 이것저것 해보다가 칠십 줄에 이걸 만나보니, 아, 이게 바로 늙은이들이 해볼 만한 일이구나, 딱 느꼈지.” 수의사 출신의 진씨는 70살이 넘어 귀농해 딸기 농사를 접하고 ‘딸기 수경재배’ 전도사로 변신했다. 수경재배가 뭐기에 목소리 높여 노년층 농사일로 강력 추천하는 걸까?
딸기 모종을 땅에 심지 않고 80㎝ 이상 높이에 수경시설(베드)을 설치해 재배하는 방식이다. 모든 작업을 허리를 굽힐 필요 없이 서서 하므로, 작업 능률이 높아지고, 노약자들도 편하게 일할 수 있다고 한다. 또 토양재배(토경재배)에 비해 탄저병 등 피해나, 상품 불량률이 크게 줄어드는 장점이 있다. 5~6년 전 보급되기 시작한 이래 전국 딸기 농가에 확대 보급중인 농법이다. 친환경 농약을 쓰고 깨끗하게 관리된 딸기를 딸 수 있어, 수확 체험객들 발길도 이어진다.
“내가 딸기 농사꾼이라서 그러는 게 아니야. 온도 조절, 잎·꽃 솎아주기 등만 신경 써서 관리하면 늙은이들 일로 이만한 일이 없어요. 뭣보다 허리 아플 일이 없으니께.” 진씨는 “적당히 운동도 되고 적당히 머리 써서 공부도 해야 하니 노인층 농사일로는 최고”라고 주장했다. 크게 힘이 들 일이 없어, 이랑 간격만 넓게 하면 휠체어 탄 장애인들도 일할 수 있다고 한다.
초기 시설투자 비용은 평당 20만원꼴로 토양재배보다 좀더 들어가지만 시설 관리나 수확, 소득 등을 따져볼 때 노년층이 새롭게 도전해볼 만한 일이라는 게 진씨의 설명이다. 진씨는 200평짜리 하우스 5개 동을 관리하며 지난해엔 1억원의 소득을 올렸다고 했다.
요즘 들어 부쩍 언론에 오르내리는 ‘베이비붐 세대’분들. 식당 창업에만 매달릴 게 아니라 “허리 아프고 머리 아플 일 없다”는 딸기 농사에도 관심 가져보시는 건 어떨지?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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