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2.05.09 17:17 수정 : 2012.05.09 17:17

[매거진esc] 길위의 사람들

“내 여기 드나든 지 34년째요. 눌러앉은 건 한 12년 되지.”

소양호변 춘천~양구 옛길을 걷다가 마주친 이른바 ‘부창골 낚시꾼촌’. 비닐집을 닮은 검은 움막 10여동이 모여 있다. 이 중 한 움막에 사는 이강훈(57·사진)씨는 이 ‘마을’ 터줏대감으로 불린다. 20대 초반 이곳에 낚시하러 왔다가, “경치에 반하고 잉어·붕어 입질에 반해, 텐트를 쳐놓고” 제집처럼 드나들게 됐다.

“그땐 낚시꾼들이 들끓었어요. 90년대 말까지만 해도 여름이면, 이 숲에 텐트가 300동 이상 깔렸다니까.” 당시 매점의 하루 매상이 200만원에 이른 때도 있었다고 한다. 수질 악화를 막기 위해 가두리양식장이 철거돼 입질이 뜸해지고, 텐트 단속이 이뤄지면서 낚시꾼도 급속히 줄었다고 한다. 지금 움막들에서 사는 10여명은, 그때 살아남은 “목소리 크고 기 쎈” 사람과, 새로 들어온 낚시광, 약초꾼, 요양 환자들이다. 이씨가 바로 “기 쎈 사람” 중 하나다.

“물론, 불법이지. 하지만 낚시철에 들어와 낚시하고, 약초 캐고, 길안내도 하고 조황도 알려주며 조용히 사는데 뭘.” 정치망 어업 탓에 고기가 줄었지만, 이씨는 “그래도 5월 말부턴 대물 입질이 시작된다”고 했다.

충남 논산이 고향이라는 이씨는 가족도 없이 혼자 산다. 고개 넘어 산막골에 집을 마련했지만, 부창골 움막에 와 지내는 때가 많다. “난 두려울 게 없는 혈혈단신이오. 나를 무장공비라고 신고해, 조사받은 적도 있지만 나도 착하게 살려는 보통 사람이에요.” 작은 키에 다부진 체격을 한 이씨는 “다친 낚시꾼도 구해주고, 죽은 사람도 업어나르며 살고 있다”고 했다.

“여긴 나를 포함해 별의별 인종이 다 모여들어요. 경찰 집안도 있고, 데모꾼 출신도 있고, 친일파 후손도 있고….” 먼저 들어온 이들과 늦게 온 이들 사이엔 일정한 위계가 형성돼 있지만, 서로 돕고 나누며 지낸다.

소양호 푸른 물길이 내려다보이는 평상에 앉아 이야기 나누는 동안, 처음엔 별나 보이던 이씨가, 늘 마주치는 이웃 아저씨처럼 여겨졌다. 그때 갑자기 이씨가 일어섰다. “나쁜 년! 빨리 가자!” 그러자 나쁜 년이 이씨 곁으로 다가왔고, 이어 발 큰 놈과 망치·하나가 이씨를 따라나섰다. 이씨가 기르는 네 마리의 개다. 이씨는 “곧 손님이 도착하므로, ‘물맛이 기막힌 샘’으로 물을 받으러 가야 한다”며 줄에 엮인 빈 소주 페트병 10개를 어깨에 걸었다.

인사하고 일어서자, 이씨가 물가로 뻗은 언덕을 가리켰다. “달밤에 말이요, 저 코빼기에 나가 앉아 술을 마시면 환장하게 좋아요. 5월 하순께엔 또 아카시아꽃 향이 죽여줘요. 좌우간 여긴 정말 술 마시기 좋은 곳이라니까.”

그는 자유인일까, 도피자일까?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이병학의 길위의 사람들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