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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7.04 17:11 수정 : 2012.07.04 17:11

삽시도리 이장 김영도(55)씨. 이병학 기자

[매거진 esc] 길위의 사람들

땅이름(지명)은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지명엔 그 지역의 역사나 지리·문화적 특성이 담겨 있다. 대를 이어 전해오는 우리 땅 곳곳의 지명들을 지키고 바로잡아, 대대로 전해주어야 하는 이유다.

“어따, 재미난 지명이야 수두룩헌디, 이걸 잘못 알아듣구 잘못 쓰니 문제지유.” 지난 6월 초 충남 보령시에 속한 섬 삽시도에서 만난, 삽시도리 이장 김영도(55)씨. 이 양반은 만나자마자 땅이름 유래부터 들이대며 시시콜콜 설명해 주는, 보기 드문 이장님이었다. 삽시도는 충남 보령 대천항에서 여객선으로 40분 거리에 있는, 주민 500여명이 사는 섬. 큰 섬은 아니지만 해발 114m의 제법 깊고 경치 좋은 산 아래, 멋진 바위 해안과 널찍한 모래밭 해변을 4개나 갖추고 피서객을 끌어들이는 곳이다.

“경치구 뭐구 좀 들어봐유. 요기를 진너머해수욕장이라구 썼는데 잘못됐시유. 집너머라니께. 곤칠라구 해두 먹히덜 안혀유 이제.”

김씨의 관심은 온통 섬 곳곳에 전해오는 옛 지명에 쏠려 있었다. “(관광지도에) 차돌백이산 옆에 피막산이라구 있어유. 그것두 토막산을 잘못 쓴 거여유. 우린 피막산이라구 부른 적이 읍시유.” 대대로 써온 이름이 엉뚱하게 바뀐 게 부지기수라고 한다. 관광지도와 안내판 제작을 외주업체에 맡기면서 벌어진 일이다.

“우리 섬만큼 옛날 지명이 잘 살아있는 섬도 드물 거유.” 술뚱·거멀너머해수욕장·붕구뎅이산·차돌백이산…. 그러고 보니 삽시도 지도엔, 주변의 여느 섬들보다 우리말 이름들이 유난히 많이 눈에 띄었다. 김씨가 “사라질 위기에 있다”는 삽시도의 정겨운 지명들을 늘어놨다. 장새미골(긴샘골)·갱할미바위(바닷가할미바위)·덴마술뚱(작은풀등)·물망댕이(물솟는 곳)·진구렁(긴고랑)·붕긋댕이(봉긋한 언덕)·멍데기(명덕도)…. 김 이장이 땅이름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중학생 때부터라고 한다. 친구들과 지명의 뜻을 놓고 입씨름을 벌이면서다. 옛 지명에 밝은 할아버지 두분에게서 삽시도 구석구석의 순우리말 지명들을 전해듣고 머릿속에 담아뒀다고 한다.

“학력이유? 중핵교 졸업장두 읍시유.” 그러나 김씨는 “못 배웠어도 잘못된 건 알아본다”고 했다. “삽시도만 해두 그랴. 섬 모양이 활을 닮아서가 아니여. 홍경래 난 때, 동생 홍수래랑 난에 가담했던 사람들이 도망와 살던 섬인데, 토벌대가 왔다가 반발이 심해 활만 쏘다 갔다 해서 삽시도라는 설이 맞을 거유.”

김 이장은 곧 향우회와 함께 본격적인 옛 지명 찾기 작업을 벌일 계획이다. 내년엔 정확한 옛 지명이 표기된 삽시도 지도를 만들 작정이다. 정겹고 재미있는 삽시도 땅이름들은 이제 대대로 후손에게 전해질 게 확실해 보인다.

이병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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