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2.02 15:20
수정 : 2012.02.02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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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상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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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유럽 소도시 여행
이탈리아 남부 풀리아주의 알베로벨로
이탈리아 지도 전체를 봤을 때 구두 뒷굽에 해당하는 지역이 풀리아주다. 풀리아주의 다양한 도시들 중 알베로벨로는 풀리아주의 자랑이자 이탈리아에서 가장 이질적인 느낌의 소도시다. 알베로벨로로 향하는 황톳빛 들판에는 올리브나무가 무성히 자라고 그 올리브나무 사이로 독특한 원추형 모양의 돌집들이 듬성듬성 눈에 띈다. 트룰로라고 불리는 이 지역 특유의 주거지다. 남부에서 흔히 채취되는 돌을 이용해 지은 집이다.
알베로벨로는 포폴로 광장을 중심으로 동쪽 언덕의 신시가지와 서쪽 언덕의 트룰리(트룰로의 복수형) 지구로 나뉜다. 포폴로 광장 서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눈앞에 놀라운 광경이 펼쳐진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웃한 몬티 지구와 아이아 피콜라 지구의 1400여채나 되는 트룰로가 벌집 모양의 군집을 이루며 장관을 연출한다. 특히 몬티 지구에는 1000여채의 트룰로가 비탈진 언덕을 따라 그림처럼 펼쳐져 있어, 마치 동화 속 풍경처럼 비현실적인 느낌을 안겨준다.
트룰로의 유래는 현실적이고 팍팍하다. 옛날에는 주택에 부과되는 세금이 과했기 때문에, 가난했던 이곳 주민들은 단속 관리가 나올 때면 얼른 집을 부수기 위해 이 지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돌을 이용해 트룰로를 짓게 되었다고 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동화 같지만 사실은 서글픈 서민의 삶이 녹아 있다. 조상들의 눈물과 한숨이 이제는 남부 제일의 관광거리가 되고 세계문화유산이 되었다니, 언제나 그렇듯 역사나 인간의 삶이나 참 아이러니하다.
알베로벨로를 거닐다보면 시선이 닿는 곳마다 동화 같은 풍경이다. 원추형 지붕마다 제각기 그려져 있는 태양·달·별 등의 도형과 종교적인 문양들이 더욱 신비로운 느낌을 더한다. 트룰로는 원래 원추형 지붕이 건물마다 하나씩 있는 독립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몬티 지구의 트룰로 중에서 유일하게 한 건물에 두 지붕을 가진 트룰로 시아메세가 시선을 끈다. 옛날에 아버지로부터 하나의 트룰로를 상속받은 두 형제 중 형과 정혼한 여인이 동생과 사랑에 빠지게 되자, 형제가 크게 다투고 서로 등을 돌렸다고 한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트룰로는 가운데 벽을 세워 둘로 쪼개졌고, 지붕도 둘로 나뉘게 되었다. 트룰로 시아메세는 지금까지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동화 같은 풍경 이면의 현실적인 이야기다.
몬티 지구를 한눈에 내려다보기 가장 좋은 위치는 포폴로 광장 서쪽에 있는 성 루치아 교회 옆 작은 공터다. 여기에 서면 펼쳐진 풍경 그대로 동화 같은 세상을 믿고 싶어진다. 파란 하늘과 원추형의 트룰로 그리고 또다른 세상이 존재하는 곳, 알베로벨로. 이곳에서는 보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된다.
백상현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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