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7.25 18:01
수정 : 2012.07.25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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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상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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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유럽 소도시 여행
신들이 노니는 이탈리아 남부 해안마을 트로페아
이탈리아에서 가장 가난하지만, 드라마틱한 산들과 눈부신 해안 절경, 그리고 세룰리안블루 색채의 바다가 어우러진 가장 매혹적인 주가 바로 칼라브리아다. 이탈리아 지도를 보면 장화 모양의 앞굽에 해당하는 위치다. 칼라브리아 현지인들에게 트로페아를 물어보면 누구나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티레노 해안의 ‘가장 예쁜 마을 대회’에서 트로페아는 늘 손쉽게 우승을 차지한단다. 전설에 따르면 헤라클레스가 아름다운 트로페아를 건설했다고 한다. 그래서 항구도 헤라클레스 항구라고 불린다.
트로페아에 거창한 관광 명소들이 있는 건 아니다. 그저 작은 골목길을 따라 걸으면 아기자기하고 소박한 남부 사람들의 삶의 흔적이 묻어 있는 길이 있고, 바람에 흔들리는 야자수와 낡은 집들이 있고, 그들이 땅에서 땀 흘려 가꾼 농작물이 있는 식료품 가게들이 있다. 에르콜레 광장의 끝은 하늘을 향해 열려 있는 커다란 창문 같다.
깃털 같은 흰 구름들이 수놓아진 눈부신 하늘과 푸른 티레노 바다를 바라보고, 새하얀 해변을 내려다볼 수 있는 그곳이 바로 벨베데레다. 벨베데레에 서서 눈앞을 바라보면 먼 티레노 바다에서 불어온 해풍이 온몸을 감싸고 겨드랑이 사이로 빠져나간다. 막혀 있던 가슴이 그곳에서 시원스럽게 뻥 뚫린다.
트로페아를 떠받치고 있는 깎아지른 절벽 아래, 해안가로 내려갈수록 더욱 드라마틱한 트로페아의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온다. 오전인데도 벌써 부드러운 모래 해변을 따라 수많은 파라솔이 활짝 펼쳐지고 수영복을 입은 휴양객들이 바다에 뛰어들거나 선탠을 즐기고 있다. 남부의 하늘은 투명하리만치 맑고, 뭉게구름과 모래사장은 햇살에 빛의 파편을 더욱 풍성히 뿌린다. 트로페아를 포함해 피초에서 리카디까지 이어진 티레노 해안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사람들은 이 해안을 ‘신들의 해안’이라고 부른다. 트로페아는 또 매년 128개의 지침을 가지고 도시를 평가하는 레감비엔테(이탈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환경단체)가 발행하는 ‘귀다 블루’에서 최고 등급(5-sails)을 받았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절벽 위의 트로페아는 놀라운 풍경으로 보는 이를 압도한다. 수많은 파라솔과 그 파라솔처럼 하늘에 둥둥 떠 있는 흰 구름떼, 드문드문 서 있는 우람한 야자수들, 그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 비키니를 입고 한껏 젊음을 발산하는 여인들,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오감이 활짝 열린다. 트로페아를 떠나는 기차 시간도 잊고 마치 나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그 신들의 해안을 이리저리 오래도록 배회했다.
백상현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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