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8.08 17:16
수정 : 2012.08.08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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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상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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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유럽 소도시 여행
종교개혁의 열정을 품은 도시 체코 타보르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서 남쪽으로 80㎞ 떨어진 소도시 타보르는 위대한 종교개혁자 얀 후스를 추종하는 후스파의 본거지로 유명한 곳이다. 그는 당시 부패한 로마 가톨릭을 비판하고, 어려운 라틴어가 아닌 일반 대중들이 알아듣기 쉬운 체코어로 설교를 하다가 교황 요한 23세에 의해 교회로부터 파문당한 뒤, 콘스탄츠 공의회의 결정에 따라 1415년 화형에 처해졌다. 그의 불꽃같은 신앙과 정열을 추종하는 보헤미아의 후스 추종자들은 박해를 피해 이곳 타보르로 몰려들었다. 과격하고 열정적인 후스의 추종자들은 타보르파로 그 명성을 떨치게 되었고, 자연히 타보르는 그들의 신앙을 지키기 위한 요새이자 성지가 되었다.
타보르의 중심인 지슈카 광장에는 체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웅이자 타보르를 세운 얀 지슈카(1370?~1424)의 동상이 우뚝 서서 낯선 여행자를 감시하듯 내려다보고 있다. 후스 전쟁 중에 로마제국의 황제 지그문트가 파견한 십자군을 수차례나 물리쳐서 체코의 구국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사실 그때 그의 나이가 이미 60살이었고, 한 눈이 먼 상태였다. 2005년에 그는 역사상 체코의 가장 위대한 5대 인물에 선정되기도 했다. 옛 시가지를 걷다 보면 타보르에는 똑바로 이어진 길이 거의 없다는 걸 알게 된다. 모든 길이 좁게 형성되었고, 갈고리처럼 구부러진 길이 대부분이다. 이는 이 도시를 적으로부터 지키고 방어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그렇게 건설되었단다.
타보르에서 반드시 들러야 할 코트노프 성(Kotnov Hrad)으로 향했다. 성 내부는 후스파박물관으로 개방되고, 또한 실험적인 현대 설치미술 작품들도 전시를 하고 있어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느낌이다. 전시실을 돌아본 뒤 삐걱거리는 나무계단을 밟고 성탑의 꼭대기에 오르자 성벽 바깥으로 천혜의 요새답게 깊은 절벽이 있고 그 아래로 강이 흐른다. 붉은 지붕들이 서로 이마를 맞댄 타보르의 하늘 위로 한 무리의 새가 날개를 활짝 펼치고 자유롭게 비상한다.
강을 건너 약간 비탈진 언덕길을 오르자 소박한 주택들과 드넓은 황금 밀밭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 언덕 위로 눈부시게 새파란 하늘이 빛났고, 갈대를 누이는 바람이 강 건너편 마을에서 불어왔다. 길도 아닌 길을 걸으며 마치 그 옛날 탐험가처럼 내 가슴은 뛰기 시작했다. 뒤돌아보니 저 멀리 강 건너 언덕 위에 붉은 지붕의 타보르가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길이 아닌 길을 걸을 수 있는 자유와 자신과 다름을 인정하는 삶의 여유로움. 세상은 언제나 그런 자유마저 빼앗으려 하지만 여행이든, 일상이든, 우리는 자유로울 권리가 있다. 꿈꾸는 자의 행복과 꿈이 없는 자의 고단함을 나는 안다. 저 머나먼 풍경 너머에 행복이 있을 거라 믿으며 그렇게 길을 걸어간다. 내 앞에 주어진 길은 무엇일까? 오늘 타보르의 황금 밀밭에서 한 여행자는 눈앞에 한없이 펼쳐진 길을 보며 고민에 빠졌다.
백상현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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