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11.21 17:11
수정 : 2012.11.22 14:08
[매거진 esc] 유럽 소도시 여행
중세에서 시간이 멈춰버린 도시, 스페인 톨레도
화가 엘 그레코가 너무나 사랑한 도시이자, 라만차의 지평선 위에 타호강이 부드럽게 감싸고 흐르는 아름다운 도시, 톨레도.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에서 남쪽으로 70㎞ 떨어진 이 도시는 기원전 2세기에 로마의 식민도시였고, 이후 고트의 중심도시로 발전했다. 이어 이슬람 세력이 침입한 이후에는 톨레도 왕국의 수도이자 상공업 중심지가 되었다. 그 뒤 카스티야 왕국의 문화·정치 중심지로서 더욱 찬란한 꽃을 피웠다. 파란만장한 역사의 부침 속에 기존의 기독교, 유대 문화와 함께 이슬람 문화가 더해져서 톨레도는 세 가지 문화가 공존하는 종교와 예술의 도시로 거듭났다. 고스란히 보존된 중세 도시의 매력으로 스페인을 찾는 여행자들의 필수 여행지로 꼽힌다.
웅장한 비사그라문과 무데하르 양식의 ‘태양의 문’을 통과해 비탈길을 걸으면 아담한 소코도베르 광장이 맞아준다. 이슬람 지배 시기에는 주로 가축시장이었고, 투우나 축제 등 공공 행사가 주로 열렸던 시민들의 열린 마당이었다. 광장을 둘러싼 바르와 카페, 기념품점, 그리고 아기자기한 마사판(Mazapan) 전통과자 가게들로 정감이 넘친다. 오늘날 스페인 가톨릭의 총본산인 톨레도 대성당의 세 개의 문은 각각 지옥, 용서, 심판을 상징한다.
프랑스 고딕 양식의 이 대성당은 페르디난드 3세가 1227년 건설을 시작하여 266년이 지난 1493년에 완성되었다. 건물의 규모는 길이 113m, 너비 57m, 중앙의 높이 45m에 이르는 압도적인 공간이다. 성당 중앙에 있는 화려하고 정교한 성가대석을 비롯해 보물실, 성물실 등 휘황찬란한 유물들이 가득하다. 무엇보다도 성당 안 박물관에 있는 엘 그레코의 그림들이 인상적이다. <참회의 베드로> 등 엘 그레코의 작품뿐만 아니라 반다이크, 고야의 작품들도 시선을 끈다.
소코도베르 광장에서 출발하는 꼬마기차를 타고 톨레도를 조망할 수 있는 언덕길을 올라간다. 그 언덕길 가장 높은 전망대에 오르자 톨레도의 그림 같은 전경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하지만 멈추지 않고 그냥 다시 내리막길로 향하는 꼬마기차가 못내 야속했다. 톨레도를 온전히 카메라에 담아보고 싶어서 언덕길을 다시 걸어 올라가기로 맘먹었다. 타호강을 따라 걷는 느린 산책은 색다른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빠른 속도로 지나칠 때는 보이지 않던 풍경들이 내 마음의 프레임에 오롯이 새겨진다. 왕 같은 알카사르와 왕비 같은 대성당, 그리고 오밀조밀 모여 있는 중세의 집들이 어울린 톨레도, 그 천년의 고도를 감싸고 흐르는 타호강과 오랜 세월만큼 깊은 절벽이 어울린 풍경 앞에서 감탄사가 절로 터져나온다. 톨레도를 일평생 사랑한 화가 그레코의 심정이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글·사진 백상현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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