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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2.09 11:37 수정 : 2012.02.09 11:46

정찬성. 박미향 기자

김남훈의 싸우는 사람들
유에프시(UFC) 출전 이종격투기 선수 ‘코리안 좀비’ 정찬성

고딩 때 일진 괴롭힘
맞아죽겠다고
이모 손 이끌려 격투기 입문

그의 선배들은 모두 점프대가 있었다. 한국에서 격투기 스타가 되려면 모두 스펙이 필요했다. 그 스펙은 다양했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땄거나 천하장사 또는 기구한 사연의 풍운아 등등. 이처럼 스펙을 만족시킨 이들이 나와야만 대회가 열리고 방송사가 붙었으며, 자신을 알릴 수 있었다. 최홍만이 그랬고 추성훈이 그랬다. 비교적 무명이었던 김동현조차 주관 방송사가 기자들을 한정식집에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며 유에프시(UFC·Ultimate Fighting Championship) 출정식을 치를 정도였으니까. 이렇게 시스템이 만들어준 점프대를 타고 그들은 공중으로 날았고, 누군가는 더 멀리 누군가는 추락하기도 했다.

정찬성(26)에겐 그런 점프대가 없었다. 그가 처음 싸웠던 곳은 경기장도 아닌 지방의 한우축제였다. 질 좋은 1등급 쇠고기를 선전하는 그곳에서 그는 작은 승리였지만 아주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김대환 이종격투기 해설위원은 그때의 모습을 이렇게 기억한다. “아무튼 대단했어요. 치고 박고 때리는데 전혀 주저하지 않는 게 느껴졌거든요. 피를 철철 흘리면서 싸우는데 아…, 그런데 데뷔전이라니, 허허.”

그렇게 그는 정말 바닥에서부터 올라왔다. 물어봤다. 혹시 이런 출발이 기분 나쁘지 않았냐고. “뭐, 그러려니 했어요. 내가 좋아서 하는 거니까. 그래도 인기라던가 돈이라던가 제가 열심히 하는 것만큼 뭔가 더 따라올 거란 기대는 있었죠. 그런데 아무리 열심히 해도 별로 나아지는 것은 없더라고요. 그래도 사람들은 좋았으니까.”

사회에 발을 내딛는 순간, 대기업과 중소기업, 그리고 다시 정규직·비정규직으로 나눠지는 세상. 회사원으로 보면 그는 아주 작은 회사의 비정규직이었다. 난 그가 한국에서 승수를 쌓고 일본 무대에서도 연승하던 때를 기억한다. 우연히 길에서 만나 반갑게 말을 걸었는데 한마디 툭 던졌다. “그런데 아무도 절 몰라봐요.” 노력에 대한 결과가 대칭적이지 않은 상황, 이때가 정말 힘들지 않았을까.

지난해 12월11일 캐나다에서 열린 UFC140에서 마크 호미닉(30·캐나다)을 7초 만에 이긴 뒤 승리 뒤풀이를 하는 정찬성 선수.

“케이지 문 쿵 닫힐 때
앗 깜짝 놀라면
이미 늦어요”

“복잡하게 생각하진 않았어요. 내가 뭔가 불태울 수 있는 15분(라운드당 5분씩 모두 3라운드)이 있다는 게 더 중요했어요. 전 고등학교 때 좀 맞고 살았어요. 물론 ‘빵 셔틀’(중·고등학교에서 힘센 학생의 강요로 빵·담배 등 심부름을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소위 잘나간다는 일진 애들한텐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이모가 ‘너 그러다가 맞아죽겠다’며 격투기 도장에 억지로 데려갔는데 뭐… 그냥 느낌이 온 거죠. 이거 너무 재밌다, 이렇게 말이죠.” 이모부도 아닌 이모의 거의 강제적인 권유. 이모는 아직도 그에게 세상에서 제일 무섭고도 고마운 존재 가운데 하나다.


격투기에서 이름을 날리는 이들 가운데 청소년기에 이른바 왕따의 상처를 받았던 이들이 많다. 정찬성은 그때 괴롭혔던 일진을 만나면 어떡할까? “죽여버려야죠.”(웃음) 살짝 웃으면서 농담조로 이야기하지만, 앙금은 있나보다. 지금 힘 있다고 살 만하다고 과거의 상처를 쉽게 잊고 용서하라고 하는 것도 말이 안 되는 것이겠지. 29만원짜리 독재자에게 당했던 사람들이 지금 먹고살 만하다고 그때를 다 잊고 감싸안으라는 게 말이 될까. 상처라는 기억은 조각칼처럼 머릿속을 후벼파는 것. 아 그나저나 그의 고등학교 일진 출신들, 당분간 동창회 모임 나갈 때에는 정찬성의 훈련 일정을 참고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요즘 정찬성, 시쳇말로 완전 떴다. “조만간 티브이 예능 프로에도 나갈 것 같아요. 왜들 이렇게 날 찾지?” 그럴 만도 했다. 세계 최대 이종 종합격투기 대회인 미국 유에프시 출전 뒤,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의 경기는 정말 재밌으니까. 정찬성은 유에프시의 데이나 화이트 회장이 가장 좋아하는 한국인 선수이기도 하다. 그의 경기에 흠뻑 반해서 정찬성 선수의 티셔츠를 입고 공식 기자회견을 하기도 했다. 특정 선수의 티셔츠를 입고 진한 애정표현을 하는 건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끊임없이 주먹을 맞고도 상대를 몰아붙인다고 해서 붙여진 그의 별명은 ‘코리안 좀비’. 그 화끈한 경기는 아주 잘 만들어진 ‘1인칭 슈팅 게임’을 보는 것 같다. 계속 쏘고 피하고 움직이고…. 총알이 옆을 스쳐지나가 부서진 담벼락에 맞고, 고개를 급히 숙여 갈지자로 이동하며 다시 조준사격. 흐름은 과격한데 두 발자국 뒤에서 보면 느릿하게 흐르는 강물 같다. 모든 선수와 팬들이 원하는 경기이지만 쉽게는 할 수 없는 것이다. 그 완급 조절이 마치 퀜틴 타란티노 감독 영화의 클라이맥스만 편집해서 보는 것 같았다. 그 비결을 물었다.

 “전 싸움이라고 생각해요. 케이지(강철망으로 만들어진 경기장)에 들어가면 쿵 하고 문이 닫히는데 이때 앗 하고 깜짝 놀라면 이미 늦어요. 처음부터 이건 시합이 아니라 싸움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렇지. 죽고 죽이는 싸움. 파이터는 권태에 빠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루한 훈련. 그런 권태는 조급함을 만들고 그 조급함은 승리의 갈증을 불러온다. 그래야만 두려움을 잊을 수 있으니까. 바람의 파이터 최배달도 결전을 앞둔 날엔 머리가 한 움큼씩 빠질 정도였다고 하지 않았나. 혹시 무섭지는 않을까? 답을 알면서도 물어봤다.

 “그런 질문에는 안 무섭다고 답할 수밖에 없어요. 내가 뭔가 말을 꺼내는 순간 저 스스로도 듣거든요. 조제 알도(조제 아우두, 현 유에프시 챔피언 선수)요? 힘든 상대이지만 이길 수 있습니다. 아니 이길 겁니다. 제가 이겨요.”

 그의 다짐은 참 혹은 거짓일 수도 있고, 증명 불가능한 명제일수도 있다. 아니,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부’라는 말처럼 ‘승리를 장담’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적일 수도 있다.

지난해 12월11일 캐나다에서 열린 UFC140에서 마크 호미닉(30·캐나다)을 7초 만에 이긴 뒤 승리 뒤풀이를 하는 정찬성 선수.
그의 파이터 인생은 10여년 남았다고 볼 수있다. 그동안 그는 수만발의 펀치를 날리고 상대를 쓰러뜨리고 위에 올라타며 또한 밑에 깔려서 비명을 지를 것이다. 이 건장한 신체도 어느덧 시간이 흘러 추운 아침 시동이 잘 걸리지 않는 오래된 자동차처럼 꿀렁거릴 때도 있겠지. 그래도 그 자동차는 자신이 나아갈 방향을 잘 알고 있다.

 아! 그런데 정말 기쁘지 않나? 이렇게 자신의 인생을 120% 사용하면서 직진하는 청춘을 보는 것 말이다. 은퇴 뒤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 물어봤다. “격투기가 제 인생의 전부라고는 생각 안 해요. (현역을 마친) 이후의 무언가가 또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건 그때 생각하고 지금은 이 상황에 최선을 다할 거예요.”

 그때 옆에 있던 그의 스승 전찬열 코리안탑팀 대표가 “조만간 경기 일정이 잡힐 것 같다”고 살짝 귀띔해줬다. “찬성이, 정신 차려. 오늘 딱 두 번만 죽자. 알았지? 딱 두 번만 끝까지 가보는 거야.” 그 말에 정찬성은 이를 악물었다.

김남훈의 싸우는 사람들
 나는 훈련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물러서 그 광경을 지켜봤고 잠시 뒤 도장을 나왔다. 보도블록 위에서도 도장에서 샌드백을 치는 소리가 펑펑 펑펑 들렸다.

 

⊙ 정찬성 프로필=코리안탑팀 소속 선수. 키 176㎝, 몸무게 66㎏. 미국 유에프시 출전중. 2011년 월드 엠엠에이(Mixed Martial Arts) 어워드 올해의 서브미션 부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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