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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4.04 17:16 수정 : 2012.04.04 17:16

[매거진 esc] 김남훈의 싸우는 사람들

대한민국 대표 프로파일러 표창원 경찰대 교수

그를 처음 만난 곳은 어느 저녁 모임 자리였다. 그는 왼쪽에 앉은 나와 격투기와 연쇄살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고, 오른쪽에 있던 음대 교수와는 요즘 오디션 문화가 가진 문화권력의 배분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그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항상 눈을 살짝 내리깐다. 그 눈동자 너머로 강렬한 호기심이 느껴진다.

profile

1966년생. 1989년 경찰대 5기 졸업. 1989~1993년 경기지방경찰청 등에서 근무. 1995년 영국 엑서터대 대학원 경찰학 박사(국내 경찰학 박사 1호). 1999년 경찰 사직. 2001~현재 경찰대 행정학과 교수(범죄심리학).

표창원(46·사진) 경찰대 교수는 엘리트 경찰 출신이자 국내 대표 프로파일러다. 지난달 7일 서울 강남역 한 카페에서 만난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범죄는 뭐였죠?” 따위는 물어보지 않기로 했다. 그는 인간의 심연을 들여다본다. 그것도 범죄라는 썩은 부유물이 가득한 흙탕물 말이다. 그에게 이런 질문은 이미 익숙해진 것일 테니 말이다.

“내가 돈 벌려고 이 짓 하는 줄 알아요? 도둑놈 잡으려고 이 짓 하지.” 텔레비전 고발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만난 대전의 한 강력계 형사는 전라도·충청도 사투리가 뒤섞인 억양으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에게도 물었다. 왜 이 일을 하게 됐냐고.

“고등학교 때에는 공부도 좀 하고 주먹도 좀 쓰는 선도부 같은 이미지였죠. 하루는 반 친구들이 너무 기운 빠져 있는 것 같아서 재밌게 해줄 생각으로 체육실에서 육상경기 신호용 화약을 가져와 폭음탄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그 폭음탄이 그만 사제폭탄이 된 거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전 병원에 실려 왔고 오른손은 너덜거리는 상태였고요.” 그는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제법 공부를 하는 편이었는데 집에서 난리가 났죠. 저는 지레 병원비 걱정을 하면서 학비가 안 드는 학교를 찾기 시작했죠. 그러다가 경찰대가 눈에 들어온 거고요.”

이 심각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한민국 최고 프로파일러의 경찰대 입성 계기가 사제폭탄이라니! 그는 경찰대가 힘들었지만 적성에 맞았다고 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도 ‘파도’와 ‘둥지’라는 두 학내 서클 사이에 과도한 폭력이 일어나지 않도록 중재자 구실을 했고, 해병대 출신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강직함도 경찰대와 잘 어울렸다. 눈앞에서 폭발물이 터지면서 만들어낸 화학작용은 이처럼 그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의 경찰대 학창 시절은 1980년대와 겹친다. 민주화 투쟁과 이에 대한 경찰의 진압이 이어지던 당시, 그와 동기생들은 자신들의 역할에 대해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고 한다. 그래서 5개로 조를 나누어 시민운동가, 기자, 교수, 학생운동권 관계자에게 자문을 구하러 갔다고 한다. 이 비밀스런 작업에서 그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을 찾는 미션을 수행한다. “그때의 혼란이 정의와 부정 사이의 투쟁이었을까요? 의문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자문을 해주신 분들이 모두 같은 대답을 해주셨어요. ‘너희들은 경찰대생이다. 지금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한 준비를 해야 하는 사람이다. 학교에 돌아가 미래를 준비하라’고요.”

대학 졸업 뒤, 일선 경찰 업무를 경험한 그는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수사현장에서 과학보다 육감과 인맥이 더 지배하던 시대. 좀더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수사기법을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현재 경찰 신분은 아니지만 여전히 경찰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 교집합에는 늘 강력사건, 정확히 말하면 범인은 종잡을 수 없는데 현장은 아주 참혹한 사건이 있다. 그런 현장이 무섭진 않을까. “범죄현장은 정말 참혹합니다. 그런데 어서 범인을 잡아야겠다는 당위가 불편한 감정을 억누르지요. 그런데 그게 없어지는 게 아니라 그냥 억누를 뿐입니다. 그다음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우리는 낙인찍기를 통해
‘저 사이코패스는 나와 다르다’며
거부하면서 안심하는지도 모르죠”

나도 보름 전 일본에서 프로레슬링 경기를 했다. 레슬러의 몸은 자동차 범퍼와 같다. 충격을 흡수한다. 그런데 결국 그 범퍼도 상처가 나고 해져 못쓰게 된다. 그 참혹함의 정도가 가장 심한 건 역시 ‘사이코패스’가 아닐까? 혹시 유영철 같은 사이코패스에 대해 어찌 생각하느냐고 물어봤다.

“사회 규범이나 작동 체계에 문제가 생길 때 사회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사람이 늘어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사이코패스를 정확히 규정할 수 있느냐는 좀 별개의 문제라고 봅니다. 오히려 우리는 이런 낙인찍기를 통해 늑대인간, 드라큘라처럼 ‘저 사이코패스는 우리 같은 사람이 아니야’라고 거부하면서 안심하는 것인지도 모르죠.”

유괴당한 아이가 토막난 채 발견됐다. 사체 일부가 식당 화장실에서 발견됐는데, 식당 주인은 재수없다며 증거가 있던 화장실을 락스로 청소하고 소금을 뿌렸고, 유일한 목격자인 종업원은 귀찮다는 이유로 수사에 협조를 안 했다. 언론은 범인을 사이코패스라며 떠들썩하게 분노했지만, 정작 사건현장에서 그를 가장 괴롭힌 건 바로 식당 주인과 종업원 같은 평범한 시민이었다.

어떤 악이 더 나쁜 것일까? 악은 계량화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악에 대한 처벌도 그리 할 수 있는가? 그는 대화를 하면서 종종 이에 대한 의문을 이야기했다. 대중은 사이코패스를 저주하면서도 그 현상을 즐긴다. 이처럼 바람이 불고 어두운 곳에서 뭔가가 나타났을 때, 고개를 박은 채 도망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두 눈을 똑바로 뜨고 가까이 다가가는 사람이 있다.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서. 표창원은 그런 사람이다. 그는 오늘도 그 어두운 곳으로 스스로 찾아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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