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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지리 요시히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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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김남훈의 싸우는 사람들
WWE 챔피언 3관왕 일본 프로레슬러 다지리 요시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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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회사 다니면서
홀로 레슬링 훈련 그는 대학 2학년 때 ‘울티모 드래건’이라는 일본 레슬러의 화려한 공중살법을 우연히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그 뒤 금융업계에서 회사원으로 일했지만 계속 레슬러의 꿈을 감추고만 살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직접 실행에 옮기기로 결심한다. 이 바닥에서 위로 올라가는 사람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바로 검증받은 재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 자질은 올림픽에서 메달을 땄거나 또는 데뷔 초부터 스카우터들과 언론의 주목을 받는 것으로 증명한다. 그런데 다지리는 달랐다. “당시 일본에 있는 모든 단체에 이력서를 보냈지만 아무도 답장을 주진 않았죠. 그래서 일단 취직해서 돈을 벌면서 체육관에 다니면서 몸을 단련하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빅토르 키뇨네스라는 사람이 ‘아이더블유에이-재팬’(IWA-JAPAN)이라는 단체를 세웠고 이력서를 보냈더니 답장이 왔죠. 오디션 보자고요.” 그는 항상 링으로 향하기 전, 본부석에 놓인 영정사진에 목례를 하고 입장한다. 그 사진의 주인공이 바로 빅토르 키뇨네스다. “나중에 빅토르에게 물어봤죠. 왜 날 뽑았냐고요. 사실 그는 저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대요. 당연하겠죠. 그런데 제 사진을 보고, 그의 고향인 포르투갈 식으로 ‘천사가 살고 있는 얼굴’이라고 말했다더군요. 그런데 빅토르는 지금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어요.” 하지만 데뷔전부터 관객과 평론가로부터 혹평을 받았다. 작은 체구라는 불리한 ‘스펙’ 탓에 그저 그런 평범하고 눈에 안 띄는 선수. 경기에서 이기는 날보다 지는 날이 많았고 객석의 반응은 차가웠다. “이노키와 김일 같은 그런 탈아시아급의 거한 레슬러들이 싸우는 경기가 프로레슬링의 전형적인 스타일이었지요. 아니면 코믹 레슬링을 하거나. 아마 저 같은 레슬러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그는 일본에서의 레슬러 생활을 고심하다 멕시코로 향한다. 프로레슬러에게 멕시코는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비빔밥 같은 곳이다. 가혹한 시합 일정과 맥주병을 던지는 관중들, 그러나 위로 올라가면 엄청난 기회가 있는 곳. 남미 안데스 산맥의 사막에는 ‘칼렌드리아’라는 꽃이 있다고 한다. 평상시에는 그저 사막으로 보이지만 10년에 한 번 큰비가 쏟아지고 나면 사막을 온통 붉은색으로 뒤덮는다고 한다. 그 칼렌드리아처럼 그의 프로레슬링 인생에 꽃이 피기 시작했다. “멕시코는 정말 힘들면서도 즐거웠죠. 멕시코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프로레슬링에 투영합니다. 현실의 아픔을 잊기 위해 경기장을 찾죠. 하루에 두 번이나 노상강도를 당할 정도로 치안이 불안하지만, 차비가 없다고 하면 강도가 지갑에서 약간의 여비를 빼주는 곳. 그곳이 바로 멕시코였죠.” 그는 단순히 상대를 더 아프게 때리거나 반칙을 하는, 또는 흉기를 휘두르는 그런 평면적인 악역에서 벗어난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캐릭터를 만들었다. 어딘가 위험하고 음침한 분위기를 풍기면서도 몸동작 하나에는 절도가 있는 레슬러. 종합격투기 파이터를 연상시키는 훌륭한 펀치와 킥의 콤비네이션, 눈을 의심케 하는 화려한 공중기술들. 이 전대미문의 캐릭터는 대성공을 거두고 그에게 일생일대의 기회가 온다. “관중의 열광에 지면
무너지는 거라 생각
나는 악역 캐릭터다” 바로 세계 최대의 프로레슬링 단체인 더블유더블유이에서 오디션 제의가 왔던 것. 축구로 치면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야구로 치면 메이저리거가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런데 그는 뜻밖에도 그 첫번째 제의를 거부한다. “스카우터와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저 흔한 악역 레슬러 그 이상 그 이하로도 아니더군요. 제가 만약 그때 더블유더블유이와 계약을 했다면 순전히 돈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오직 돈 때문에 지금까지 만든 저의 프로레슬링 캐릭터를 망치고 싶지는 않았어요.” 역시 위로 올라가는 사람들에겐 특유의 승부에 대한 감각이 있는 것일까. 비슷한 시기에 오직 인기 레슬러들의 제삿밥이 되기 위해서 더블유더블유이에 올라간 수많은 악역 레슬러들은 1회용 건전지처럼 잠깐 빛을 발하다가 모두 폐기처분되었다. 그는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이시더블유’(ECW)라는 중소단체에서 큰 인기를 끌게 된다. 그 인기를 바탕으로 더블유더블유이가 다시 스카우트 제의를 한다. 이때는 오디션도 없었다. 첫번째 제안과는 차원이 달랐고 그의 캐릭터도 모두 존중한다는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수만명의 관중이 지켜보는 더블유더블유이 링에서도 그는 결코 기가 죽는 법이 없었다. 키가 2m가 넘고 몸무게는 160㎏을 넘는 레슬러와 싸우면서도 그는 선수를 이기고 관중을 이기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더블유더블유이 라이트헤비급 챔피언과 태그팀 챔피언까지 지내며 미국 몇몇 지역에서는 야구선수 이치로보다 더 유명한 일본인이 되었고, 위키피디아에는 14개 국어로 주석이 붙는 선수가 되었다. 아무도 이력서를 받아주지 않던 일본에서 멕시코로 건너가 미국의 더블유더블유이까지. 그 더블유더블유이는 2002년 일본 요코하마에서 원정 흥행을 했다. 당시 크루저급 챔피언이었던 다지리. 고향 팬 앞에서 그때의 감상은 어땠을까? “관객들의 호응은 대단했습니다. 대회가 끝난 뒤 동료 선수들이 혹시 너 일본의 왕이 아니냐고 농담을 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그 관중의 열광에 지면 제 캐릭터가 무너진다고 생각했습니다. 전 어디까지나 악역 캐릭터이고, 그 캐릭터 안에서 절 이끌어내서 보여줘야 한다고 봤죠.” 당시 3만엔 하던 입장권이 20만엔까지 올라갔다. 그렇게 자신을 응원하는 수만명의 팬. 이 화려한 성과 앞에서도 그는 담담했다. 이것이 바로 챔피언의 품격이 아닐까. 그는 26일 자신의 새 프로레슬링 단체인 ‘레슬링 뉴 클래식’을 출범한다. 자신을 치장하고 있던 모든 것을 스스로 내려놓고 또다시 자신만의 세계관을 구축할 프로레슬링 경기를 하겠다며 단체를 설립했다. 나와 마주한 그의 얼굴에서 불안함과 기대를 주섬주섬 배낭에 한가득 집어넣고 가장 싼 편도 티켓으로 멕시코로 갔던 어느 레슬러의 모습이 다시 보였다. 김남훈/프로레슬러·육체파 지식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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