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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5.23 17:25 수정 : 2012.05.23 17:25

격투기, 게임 등 남성 선호 스포츠 전문 캐스터 성승헌

[매거진 esc] 김남훈의 싸우는 사람들
격투기, 게임 등 남성 선호 스포츠 전문 캐스터 성승헌

profile

성승헌 1978년생. 2002년 아이티브이(iTV) 게임 스페셜 명승부 베스트로 데뷔. 현재 온게임넷 e스포츠, 수퍼액션 UFC 캐스터로 활동중.

“처음엔 마냥 신났죠
3년 정도 지나니까
갑자기 부끄러운 거예요”

남자들은 흥분한다. 그의 목소리만 들으면 흥분한다. 사춘기 짝사랑 옆집 누나의, 바람에 살짝 올라간 치마를 봤을 때처럼 가슴이 떨린다. 지난 14일 서울 용산역 카페에서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그의 목소리를 알아본 남자들이 힐끗힐끗 쳐다본다. 티엔에이(TNA) 프로레슬링과 유에프시(UFC) 격투기와 스타크래프트까지. 세상의 엄마들이 싫어하는 모든 것, 그러나 남자들이 사랑하는 모든 것을 중계하는 남자 캐스터 성승헌을 만났다.

사실 성승헌 캐스터와 나는 2007년 가을께부터 같이 유에프시종합격투기 대회를 3년 가까이 했다. 남자 아나운서 또는 캐스터 이런 분들의 공통점은 약간 희멀거면서도 미끄덩한 느낌이 있다는 것이다. 훤칠하고 잘생긴,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절대 주지 않고 세간의 평가에 민감하다. 그런 도시 여피족의 느낌이 강한 사람들 말이다. 그런데 성승헌은 그때부터도 수컷 냄새가 풀풀 났다. 그 수컷다움은 사전준비에 있었다. 대회에 출전하는 선수들에 대한 지식, 기술에 대한 이해뿐 아니라 얼굴이 헷갈리기 쉬운 무명의 세컨드는 시합영상을 캡처해서 인쇄해 준비해 놓는다. 짧은 시간이 아니라 상당히 많은 시간을, 그리고 정성을 들여야만 하는 것들을 그는 굳이 준비했고, 나와의 방송에서 뿜어내곤 했다. 사자는 늙은 말을 사냥함에도 결코 방심하지 않고 전력을 다한다. 그래서 그와의 중계는 재미있었지만 긴장감도 상당했다. 달의 에너지로 밀물과 썰물이 주고받듯 캐스터의 영역과 해설의 영역이 팽팽하면서 묘한 분위기가 나곤 했다.

“10년 전에 원래 방송국 에프디(FD)로 시작을 했어요. 편집을 하면서 ‘카메라 앞에 서보는 것은 어떨까’라고 생각을 했죠. 원래 말재주는 좀 있는 편이었거든요. 그래서 아리랑티브이와 스카이라이프 쪽에서 처음 캐스터 일을 했는데 그땐 그냥 마냥 신났죠. 그런데 3년 정도 지난 시점에서 갑자기 부끄러운 거예요.”

그와 알고 지낸 지 이제 5년. 언제나 뱃속에서부터 바로 비등점으로 향해 수직상승하는 화끈하면서도 시원한 목소리와 선수들의 결정타를 전달해주던 그가 아니던가. 그런 그의 입에서 “부끄럽다”는 말을 처음 들어봤다.

“약간의 수입도 생기고 업계의 평판도 나쁘지 않았죠. 그런데 제 자신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한 거예요. ‘이대로가 좋은 것인가’라고 말이죠. 프로레슬링, 격투기, 게임이든 간에 어떤 종목이든 선수들은 피땀 흘려 경기를 준비하고 그 몇 분, 몇 시간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내잖아요. 그 선수들의 모습에 갑자기 제가 부끄러워지기 시작한 거죠.”

어떤 일이든 3년 정도 하면 자신감이 생긴다. 그것에서 여유를 찾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더 앞으로 나아가려는 사람도 있다. 성승헌은 후자에 속한다. “학원에 등록했어요. 현업 3년차가 학원에서 방송일을 다시 공부하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죠. 하지만 다른 이들의 시선을 신경 안 쓴 건 아니었지만 저 자신을 용납하기 힘들었어요. 다시 기본을 익혔죠.”

그는 특유의 화창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학원 수업이 끝나면 사무실에서 창문 밖으로 지나가는 자동차들을 보며 중계를 해봤죠. 생각보다 쉽더라구요. 그래서 그다음엔 불 꺼진 사무실을 중계해봤습니다.” 응? 내 귀를 의심했다. “그곳엔 변화가 거의 없기 때문에 아주 집중을 해야 해요. 바람이 불어와 종이컵이 쓰러지는 것은 어마어마한 대사건이죠. 그렇게 디테일을 살리는 연습을 했습니다.”

스튜디오로 향하는 그의 뒷모습에선 어떤 결기가 항상 느껴졌다. 결투장으로 향하는 무사의 모습. 잡념을 남기지 않고 여력을 계산하지 않는다. 그곳에서 지면 모든 것이 끝나기 때문이다. 그 결기의 경험적 배경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김남훈 위원님과 격투기 중계를 하게 됐을 때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차는 공격기술에 대해선 이해가 되는데 관절을 꺾는 기술에 대해선 느낌이 잘 안 오더라구요. 특히 다스 초크(상대의 경동맥을 압박하는 기술)를 잘 모르겠더라구요. 그래서 격투기 도장에도 등록을 했지요.” 캐스터들은 눈이 좋다. 그래서 그들은 자세한 룰이나 기술에 대한 이론적 배경을 몰라도 흘러가는 분위기와 어림짐작이라는 ‘촉’을 이용해서 충분히 상황을 전달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치트키를 이용하지 않고 정면승부를 선택했다. 자신이 제대로 알아야만 시청자에게 전달할 수 있으니까.

“이승엽 선수가 한 말인데요. 팬들은 선수의 부상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저도 그렇습니다. 제가 목이 아프다거나 컨디션이 안 좋다거나 하는 것은 결코 변명이 될 수 없지요.”

프로페셔널은 남들이 따라하지 못하는 걸작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최악의 상황에서 팔 만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드는 것이 프로다. 그리고 우리들의 상황은 언제나 최악이다. 그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떡이다가 갑자기 창피함에 얼굴이 붉어졌다. 최근에 라디오 진행을 하면서 각종 스트레스에 대한 호소를 제작진에 한 적이 있다. 돌아온 대답은 누가 등 떠밀어서 했냐는 것. 냉정한 듯하지만 그것이 바로 프로의 세계다. 디 에이치 로런스의 시구처럼 야생동물은 스스로를 위로하지 않는다. 프로는 야생동물 같다. 스스로를 위로하지도 않고 위로를 원해서도 안 된다.

그는 격투기 대회 100여개와 게임 4000여개를 중계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그 수는 그의 이러한 철저한 프로페셔널리즘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멘트벽에 페인트를 발라놓고 그것이 말라가는 모습도 성승헌이라면 정말 재미있게 두 시간 동안 중계할 수 있지 않을까? 그와 인터뷰를 하고 이틀 뒤, 미국에서 종합격투기 정찬성 선수가 포이리에 선수를 4라운드에 극적으로 꺾고 챔피언 도전권을 한국인 최초로 획득했다. 그때 승리했던 기술은 바로 성승헌을 격투기 도장으로 이끌었던 다스 초크. 경동맥이 조여짐에 따라 두뇌로 향하는 혈액이 줄어들며 정신을 잃어가는 그 기술의 아픔을 100% 이해하고 있던 그. 정찬성의 멋진 기술과 함께 성승헌이 뿜어내는 아드레날린이 텔레비전 화면에서 흘러내려 내 방을 적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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