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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7.04 17:05 수정 : 2012.07.04 17:05

[매거진 esc] 김남훈의 싸우는 사람들

한국인 최초로 3대 모터 스포츠 ‘모터GP’에 참전하고 돌아와 모터사이클 레이싱팀 창단한 최시원씨

피시(PC)통신이 있었다. 접속될 때마다 스피커에서 삐~ 소리가 났다. 게시판에 글을 쓰기 전에 먼저 정중하게 인사를 해야만 했던 시대. 그때 난 최시원(36)이란 청년을 오토바이 동호회를 통해 알게 됐다.

난 일본 오토바이 잡지에서 본 기술적 내용들을 취미 삼아 번역해서 자료실에 올리곤 했는데 그는 내 글에 항상 RE로 댓글을 달아주던 친구였다. 그렇게 동호회 선후배로 단말기를 통해서 소소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집에 오겠다는 거다. 서울에서 경기도 송탄까지 말이다. 그 이유는 딱 하나 얼마 전 명동에 있는 일본책 전문 서점에서 오토바이 잡지를 샀고 그 내용을 간략하게 올렸는데 전체 내용을 읽고 싶어서라는 거다. 어? 하면서도 거절할 수 없어서 오라 그랬고 그게 바로 그와 나의 첫 만남이었다. 이후 그의 소식은 게시판과 잡지를 통해서 종종 들을 수 있었다.

오토바이 센터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 모터사이클 레이서가 됐다는 것, 팀을 창단했다는 것,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외국으로 떠났다는 것. 그렇게 16년이 흘렀고, 오랜만에 그의 소식이 다시 들렸다. 뭔가 그동안 대단한 일이 있었다는 소문과 함께. 지난달 26일 그의 숍에서 그와 만났다.

최시원씨. 박미향 기자 제공

profile

최시원

2002년 KT&G 슈퍼바이크 5위, 2005년 ‘팀 레이싱 스피릿’ 창단. 2011년 한국인 최초로 모터GP 참전 28위.

“오토바이에 빠진 계기가 뭐냐”고 물었다. 직구처럼 보이는 마구를 던져보았다. “청계천에 고가가 있던 때 우연히 헌책방 앞을 지나가다가 브로마이드를 하나 봤어요. 귀퉁이가 너덜너덜하고 변색된 거였는데 레이서들이 코너링을 도는 장면이었어요.” 그에겐 그 장면이 일종의 종교화 같았나 보다. “저 사람들은 대체 뭐지? 저렇게 우주복 같은 걸 입고 왜 저렇게 하는 걸까? 호기심이 생겼고 그러면서 오토바이에 관심을 갖게 됐죠.” 그는 바로 동네에 있는 오토바이 센터에서 ‘꼬마’로 일을 시작한다. “바퀴가 네개가 아니라 두개잖아요. 달려야만 넘어지지 않죠. 그게 뭔가 저랑 맞는 것 같았어요.” 8평짜리 매장에서 그는 체인에 그리스를 칠하고 오일을 교환하는 꼬마로 이 세계에 입문한다. “일단 배우고 싶었어요. 뭘 알아야 하죠. 그런데 자동차와는 다르게 오토바이는 학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일단 그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1년 반 정도 기름밥을 먹게 될 때쯤 2002년에 강원도 태백에 모터레이스용 서킷이 생기고 레이서로 참가한다.

“청계천 헌책방에서 낡은
레이싱 브로마이드를 봤어요.
동네 오토바이 센터 찾아갔죠”

“성적도 나쁘지 않았죠. 그런데 한계가 느껴졌어요.” 그는 센터에서 정비기사로 일했다. 레이싱에 관심있는 고객들의 머신 7대를 밤새도록 정비하고 자신의 것까지 손본 다음 강원도까지 가서 서킷을 돌면 눈동자 하나 굴리기 힘들 정도로 녹초가 되기 일쑤였다. 그런데 육체적 피로보다 더 힘든 것은 바로 레이서로서 좀더 체계적인 경험을 쌓지 못하고 있다는 자각이었다. “외국에서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시작을 하죠. 레이스는 머신을 조종하는 레이서와 현장의 기술진, 그리고 연구진까지 모두 하나가 되어 움직이는 스포츠예요. 저처럼 혼자 뛰어다는 스타일로는….” 그는 갑자기 숨을 깊게 내쉬었다. “막막했습니다. 레이스가 좋아서 제 인생을 계속 이쪽으로 달려왔는데.”

최시원은 어렴풋하게 알고 있던 일본의 유명 모터사이클업체 사장에게 자신이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막무가내로 하소연을 한다. 그런데 그는 뜻밖의 제안을 한다. 일본 레이싱팀에서 일해보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그는 일본에서 레이스 기간 중에는 하루 4시간 이상을 자본 적이 없다고 했다. 모든 것을 새로 배워야 하는 상황. 언어의 장벽도 있었다. “레이스를 준비하는 것은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쉴 수가 없었어요. 머신에 올라탄 레이서는 저에게 목숨을 맡긴 것과 마찬가지잖아요.”

“그날 서킷에 서서
아! 내가 똑바로 왔구나
눈물이 나더라구요”

레이싱 머신은 그 작은 차체에 200마력이 넘는 엔진을 탑재하고 있다. 눈 깜짝할 새에 시속 300㎞가 넘는 영역에 도달한다. 중력과 원심력 그리고 구심력의 면도날 같은 교차점을 계속 통과하며 코너링을 한다. 이 세계에서 실수란 누군가가 생명을 잃는 것을 의미한다. 엔진과 차체와 서스펜션 그리고 사람. 이것을 한줄로 배열하고 재조립하고, 그리고 분해한다. 완벽한 레이싱 머신이란 과연 존재할까. 미캐닉이 레이싱 머신을 만진다는 것은 우주의 기원을 연구하는 것과 같다.

그가 팀원들과 일본어로 농담을 구사할 정도가 되었을 때 그는 서킷의 세계에서 자리를 잡은 사람이 되었다. 팀의 성적도 8시간 내구레이스 17위부터 시작해서 7위 그리고 5위 다시 4위까지 올라갔다. 2011년 4월 그는 드디어 모터사이클그랑프리(GP)에 참전한다. 포뮬러원(F1), 월드랠리챔피언십(WRC)과 함께 세계 3대 모터스포츠로 꼽히는 모터사이클 레이스의 정점. 낡은 브로마이드로 모터GP를 처음 접한 지 17년 만이다. “기분이요? 죽여줬죠. 빙빙 돌아가는 것 같아서 답답했는데 그날 서킷에 서서 아! 내가 똑바로 왔구나 하고 눈물이 나더라구요.”

그리고 미련 없이 한국행을 택한다. 한국에서 모터사이클 레이스가 재개된다는 소식을 듣고 이 세계를 알리고 싶어서 돌아온 것이다.

“레이스는 거짓이 없습니다. 결국 한 만큼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 결과를 쳐다보는 것은 때론 너무 힘들 때도 있지만 정직함이 있는 인생. 이게 바로 레이스죠.”

그는 올해 초 혼다모터사이클 강남점으로 부임하자마자 레이싱팀을 만들었다. 우연의 일치일까. 그의 숍은 그가 17년 전 ‘센터 꼬마’로 일했던 곳과 걸어서 10분거리다. 그는 자신이 시작했던 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레이스를 위해서 그리고 자신을 위해서.

김남훈 프로레슬러·육체파 지식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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