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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8.29 17:23 수정 : 2012.08.29 17:23

뮤지션 백수(오른쪽)와 조씨. 박미향 기자 제공

[매거진 esc] 김남훈의 싸우는 사람들

느긋하고 즐겁게 기성세대의 규칙 비껴가는 뮤지션 백수와 조씨

백수와 조씨. 이 생소한 음악인들과 작년 말 토크 콘서트를 했다. 그들과 일면식도 없는 상태에서 주최측은 저렴한 출연료와 여유있는 일정을 이유로 우리를 한 묶음으로 무대에 올렸다. 그들은 너무나 일상적인 모습으로 무대에 올라서 결코 일상적이지 않은 음악 실력으로 관객의 박수를 받았다. 텔레비전 맛집 프로그램에서 항상 접하는 단어 ‘담백’. 과연 어떤 맛인지 솔직히 종잡을 수가 없지만 굳이 그들의 음악에 대한 감상평을 이야기하자면 노래 제목과 가사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직구로 던진다고 할까. 남자들도 이제 집에서 빨래와 설거지를 하자는 ‘가사분담’, 헤어진 여친이 사법시험에 붙은 걸 알고 후회하는 내용을 담은 ‘벽’, 갑자기 큰돈이 생겨도 별로 하고 싶은 게 없으니까 술이나 사먹겠다는 ‘아이 해브 어 드림’. 평범한 듯하지만 비범한 이들을 지난 23일 신촌역 인근 공원에서 만나봤다.

profile

강백수 1987년생. 한양대 국문과 졸업. 국문과 대학원 석사과정중.

조현철 1985년생. 한양대 국문과 수석입학 수석졸업. 백수와 조씨에서 보컬담당. 2012 앨범 <두파산>으로 멜론 인디차트 6위.

큰돈 생기면 술 사먹겠다
헤어진 여친 사법시험 합격
소식듣고 후회했다는 노랫말

“남중·남고를 다녔어요. 그런데 밴드를 하면 옆에 있는 여학교에 공연하러 갈 수 있다고 해서 기타 베이스를 잡은 것이 계기였습니다.”(강백수 이하 백수·사진 오른쪽) 그렇다. 사내가 갖고 있는 열정의 메커니즘은 대개 모두 같다. 바로 여자. “대학 때 힙합 동아리였는데 어느 날 모두 군대 가고 해체가 됐어요. 계속 음악을 하고 싶은데 강의실 저기 옆자리에 강백수가 있는 거예요. 쟤가 얼굴이 원체 크잖아요. 눈에 확 들어오더라구요. 자연스럽게 음악 이야기 하다가 아예 팀을 짜게 된 거죠.”(조현철 이하 조씨) 그들은 그렇게 아주 평범한 동기로 음악을 시작했고 같은 학교, 같은 과, 같은 강의실에 있다는 편한 이유에서 팀을 짰다.

“저희는 인디뮤지션이라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음악을 만들고 판매하는 것까지 모두 직접 하잖아요. 폴 매카트니도 그렇게 보면 아주 큰 인디뮤지션이라고 할 수 있죠.”(백수) “불쌍하게만 보는 시선이 정말 싫어요. 아주 풍족하지는 않지만 하고 싶은 일 하면서 고충이 있는 건 당연하잖아요.”(조씨) 가난한 인디뮤지션, 무식한 운동선수. 우린 어떤 직업 앞에 뭔가를 덧붙여서 규정하길 좋아한다. 그들을 만나고 있을 때 공원 옆 식당 티브이에서 유명 오디션 프로의 광고 영상이 나왔다. 무려 208만명이 응모를 했단다. 음악인으로서 이런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까.

“등용문이라는 부분에선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봐요. 요즘 작업실에서 홀로 마이크나 기타를 잡아선 방송에 나갈 방법이 없어요. 대형 기획사를 끼고 있거나 아니면 뭔가 다른 이슈가 있어야지요.”(백수) “우린 출생의 비밀도 없고 기구한 사연도 없어요. 몸도 너무 건강하구요.”(조씨) 잠시 후 백수가 다시 말을 이었다.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음악의 다양성을 해치고 있는 부분이에요. 이번 시즌 들어서 더욱 심해진 것 같은데 어떤 노래를 듣고 아 이건 되겠다, 안 되겠다의 기준을 심사위원이 정하고 그걸 다시 대중이 학습하는 거죠. 음악은 원래 그런 게 아닌데 말이죠.” 꽤 정확한 지점. 이미 성공한 스타일이 아니면 살아남지 못하는 것. 이것은 대중의 취향과 산업 전반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오디션 프로가 이를 더욱 가속화했다는 것을 부정하진 못할 것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진짜 승자는 바로 대중에게 문화권력을 과시한 심사위원이다.

“저희는 찌질해요
어른들은 참고 살라고 말하죠
하지만 그게 아니잖아요”

“그런데 저희도 지원했었어요.”(백수, 조씨) 응? 오디션 프로에 문제점이 많다면서요? “그대로 기회잖아요. 잡아야죠. 저희가 어떻게 방송을 타겠어요.” 백수와 조씨가 씨익 웃었다. 난 이들의 이 웃음이 너무 좋다. 솔직한 미소. 흔히들 인디밴드와 청춘을 결합하면 젊은이의 사랑과 좌절을 노래한다 그런다. 그런데 그들은 그 문법이 직설적이면서 솔직하고 조금 더 들어가면 약간 찌질하다는 느낌도 있다. 의도한 것일까. “맞아요. 저희는 찌질해요. 어른들은 참고 살라고 이야기하죠. 하지만 그게 아니잖아요.”(백수)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찌질한 게 현명한 거 아닐까요. 오히려 그게 환경에 잘 맞는 행동이죠.”(조씨) 멘토들은 이야기한다. 참고 견디고 미래에 대한 희망과 꿈을 버리지 말라고.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한국전 이후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가 청춘의 시기에 얻을 수 있는 산출물과 지금의 청춘이 얻을 수 있는 수확량은 너무나 미미하기만 하다.

과연 서울 시내에서 젊은이들이 빚 없이 살 수 있을까. 그 빚은 나중에라도 갚을 수나 있을까. 사법시험 합격한 여친을 그리워한 노래 ‘벽’은 ‘친구라도 될걸 그랬어’로 끝난다. “그거 실화예요. 제 이야기죠. 판검사 같은 로열이 친구로 있으면 좋잖아요.”(백수) “공연장에서 이 노래 불렀는데 어떤 여자분이 오시더니 자기 판사라고 노래 너무 좋다고 그러시더라구요. 판사여친은 없지만 판사팬은 생겼죠. 시디도 사가셨어요.”(조씨) 공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더니 그동안 말수가 적었던 조씨의 얼굴이 화기가 돌면서 입에서 나오는 음성신호의 양이 급증했다. “전 공연이 정말 좋아요. 돈만큼 좋아요. 노랫소리에 악기 소리에 제 멘트에 얼굴 표정이 각양각색으로 변하는 그 느낌. 정말 최고예요.”(조씨) 낚시꾼이 손맛을 알면, 도박꾼이 화투패를 쫄 때의 느낌을 알면, 결코 그 업장을 떠나지 못하는 법. 발로 차고 집어던지며 관객과 소통하는 프로레슬러의 얼굴이 조씨의 안경 뒤편으로 살짝 스쳤다. “우린 약간 찌질해요. 하지만 쿨하지 않다는 걸 쿨하게 인정할 정도로 쿨하기도 하지요.” 인터뷰 말미에 강백수는 내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선생님, 기사에 저희 페이스북 주소 좀 꼭 실어주세요.” 그 소원 들어드린다. www.facebook.com/bandbnj

김남훈 프로레슬러·육체파 지식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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